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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으로 말한다

작품 98 - 우리 한판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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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었다.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는 오후에 고향 유교리에 다녀왔다.

 

옛집에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본채와 행랑채만 그대로 두고 685평의 대지에 엉뚱한 그림이 그려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내 영혼의 사지가 반쪽은 떨어져가는 고통으로 엉클어진 공사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유교리 고택 앞에 정자 하나가 생겼다.

바로 옆 당산나무 옆에 향토유산으로 선정된  '침계정'이 있는데, 큰 돈 들어 그걸 만들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차장은 차 10대도 세울 수 없는 공간이다. 

 

심기가 불편하여 일로로 핸들을 돌렸다.

토종닭 한 마리 주문하여 기다리는 동안 카톡 문자를 확인한다.

 

남동생이 시 몇 편을 카톡에 올렸다.

처음있는 일이다. 남동생이 시를 쓰다니...

 

짠한 어머니
  나상훈


여린 허리가 굽었다.
돌정지 한복판 시금치 밭에 물주다
무거운 호스 이기지 못해
성미 급한 아버지와 부딪치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버린 뒤끝이다. 
옆구리에 두 손 받쳐 굽은 등 애써 펴고
직접 만든 식혜를 내오신다.
굽은 허리 생각하면 식혜를 마실 수가 없다.

두 무릎이 편치 않다.
장독대 건너 텃밭의 파뿌리 몇 개 뽑는다고
개수도랑 건너뛰다 돌부리에 엎어지고도
산더미 같은 일에 싸여 밀쳐둔 설움이다.
뒤뚱뒤뚱 간난장이 왼걸음으로
직접 띄운 청국장을 들고 오신다.
편찮은 다리 생각하면 청국장을 뜰 수가 없다.

손가락이 굳었다.
수십 명 일꾼들 밥해 먹이랴
수도 없는 밭을 매고 덕석 가득 머윗대 까느라
손가락을 혹사시킨 직업병이다.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 폈다
빨강 물든 사과 하나를 깎아내신다.
굳은 손가락 생각하면 사과를 집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만은 총총하다.
아득히 멀어져 간 고릿적 사연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줄줄 꿰고 계신다.
두서없이 풀어내다 때로 곁길로 새지만
정리해서 이해하면 들을 만하다. 
그래도 아버지와 문중 얘기만 나오면
청산유수 그치고 고개 외로 틀어 한숨만 쉰다.

 

영어를 미국사람보다도 더 잘하는 남동생은 대학은 영어, 대학원은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관광공사 기획실장, LA지사장, 뉴욕지사장, 런던지사장 그리고 다시 뉴욕지사장을 역임하며 K-관광의 밑그림을 그렸다.

 

서울관광공사 초대 경영본부장을 끝으로 작년에 옷을 벗었다.

최근 어떤 지자체의 산하기관인 관광공사 대표이사에 도전하여 1순위에 올랐지만 정치끈이 없어 낙점을받지 못했다. 

 

요즘 시를 쓰면서 인생공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냥 직장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간 시를 100편 이상이나 써뒀다고 한다.

 

시 속의 '돌정지'는 우리 4남매의 공동 명의로 된 꽤 큰 밭이다.

우리 부모님이 시금치를 심어서 4남매를 모두 서울로 대학 보낸 은혜의 땅이다.

 

여동생들에게도 시를 쓰라고 제안했다.

4남매가 공동으로 책을 한 권 내자. 제목을  <우리 한판 춤을 추자>로 정했다.

 

허리 굽으신 우리 어머니 구순 되는 날 

책도 내고,  시낭송도 하고, 춤을 추고 잔치를 하자.

 

유교리 고택도 좋고

돌정지에 새 기와집 지어도 좋다.

 

우리 한판 춤을 추자

어머니 구순잔치에.

 

*  사족

목포에도 눈이 내립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사진입니다. 저의 조상 나성군 할아버지의 숨결이 숨쉬는 무등산 규봉암의 설경을 촬영하던 날, 화순  장불재를 넘으면서 우연하게 담았습니다. 

 

이런 사진은 더 이상 절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자연이 만든 위대한 예술입니다.

 

Shall We Dance.

우리 한판 춤을 추자!

 

관련 블로그

 

무등산 규봉암 설경

날마다 호랑이가 장가를 갑니다. 한반도에서 불갑산을 끝으로 호랑이가 종적을 감췄으니 다시 불러들일 하늘의 계획인가 봅니다. 비바람이 불다가 해가 뜨기를 반복합니다. 덕분에 무지개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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