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일로 회산백련지에 갔다. 축제 기간은 끝났지만, 연꽃이 활짝 피어있고 사람들도 제법 많다.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더위를 피하는 방법 여덟 가지를 소개하면서 연못의 연꽃 구경하는 것을 다섯 번째로 소개하였다.
송단호시(松壇弧矢)
괴음추천(槐陰鞦韆)
허각투호(虛閣投壺)
청점혁기(淸簟奕棊)
서지상하(西池賞荷)
동림청선(東林聽蟬)
우일사운(雨日射韻)
월야탁족(月夜濯足)
솔밭에서 활쏘기
회화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깨끗한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에 물가에서 발 담그기
에어컨이 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 여유를 찾았던 그 시절이 더 운치가 있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어떤 일에 집중하는 일이다. 다산의 지혜가 엿보이는 시이다.
운치를 찾으려면 초의선사 유적지의 용호백로정이 좋다. 책 한 권 들고 정자 마루에 앉아 연꽃 바라보며 커피 마시며 책 읽으면 완벽한 피서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그걸 알면서도 일로로 발길을 돌렸다. 작년에도 자주 갔고 블로그에도 수차 소개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더 좋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확실한 건 작년 연꽃보다 크기가 다르다. 그렇게 큰 연꽃은 평생 처음이다. 몇 송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크고 탐스럽다.
고향 무안의 자랑인 회산백련지는 규모에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한 바퀴 구석구석을 돌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자세히 보려면 최소한 이틀은 봐야 한다.
피서가 아니다, 노동이다. 단순히 꽃을 감상하는 것과 사진을 담는 일은 다르다. 연꽃은 사진 찍기도 힘들다. 그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연꽃 사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찍은 사진이다. 남들은 시원한 곳 다 다닌다고 하지만 그건 그늘에서 사진만 보면서 하는 얘기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담은 컷도 있다. 그러니 대강대강 보지 말고 한컷 한컷 음미하길 바란다.
다산의 ‘소서팔사’ 중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 ‘월야탁족’이다. 달밤에 발 담글 수 있는 곳이 참 많다. 무등산 원효계곡도 좋고 하동 쌍계사 계곡도 좋다.
이번 진도 여행에서 장소를 헌팅해 두었다. 조금은 무섭겠지만, 관매도에서 발을 담그고 싶다. 방아섬도 좋고, 걷는 도중에 바닷가로 빠지는 길이 많다.
아직 조도의 사진을 다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관매도는 이야기 자체도 못 꺼내고 있다. 관매도는 백악기 때 형성된 섬이다. 지질학자인 박정웅 박사에 의하면 조도와 관매도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그 증거로 호수 밑바닥이 지진에 의해 돌출되면서 형성된 지층과 바위들이 수없이 많다.
그 바위가 바닷가에 평평하게 깔리어있는 곳이 많다. 그 푸른 바다에 아내와 함께 발을 담그고 싶다. 밝은 달을 보면서 말이다.
일에 열중하는 것이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원한 곳에서 일에 열중한다면 더 행복한 일이다. 요즘도 새벽은 시원하다. 내가 여름의 새벽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안의 연꽃과 수련 그리고 진도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 가면서, 또는 병렬시키면서 당분간 블로그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오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시원한 여름 되세요!
'백잠일기(栢蠶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적 새벽하늘 (0) | 2022.08.03 |
---|---|
갈매기는 새벽하늘의 아름다움을 안다 (0) | 2022.08.02 |
안개와 영산강 (0) | 2022.07.26 |
느낌이 있는 새벽 (0) | 2022.07.21 |
갈룡산과 주룡강의 새벽 (0) | 202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