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인데도 아침과 저녁에는 찬바람이 붑니다. 어제는 무척 바쁜 날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세 분의 손님이 목포에 오셨습니다.
고향 삼향읍 유교리에는 동생들과 공동명의로 되어있는 꽤 큰 밭이 있습니다. 그 밭 위에 숙모님의 밭이 있는데, 광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사촌 동생 현철이가 취미 삼아 농사를 집니다.
광주에 사시는 숙모님이 밭에 심은 파와 상추를 가지고 아파트 앞에 잠시 들드셨습니다. 광주에 있는 동안 전화만 드리고 아직 뵙지 못했는데 직접 수확한 채소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아직은 정정하셔서 제가 블로그도 올려드리고 카톡도 자주 주고받습니다.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어제 그렇게 잠시 뵙게 되었네요. 미루는 일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숙모님도 가끔 뵙고 사촌들도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손님은 광주에서 토목공사를 하는 제자입니다. 숭실대 시절 제자인데 목포에 자주 내려옵니다. 자신의 조카를 데리고 목포 바람을 쐬려 내려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갓바위 근처로 가서 제자 종순이와 그의 조카를 만나 단골집 <술상 밥상>으로 갔습니다. 도다리회에 술을 마시는 도중에 광주에서 내려오신 막내 외삼촌이 오셨습니다. 저와 5살 차이나는 외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는 사이라 지금도 ‘외숙’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는 자주 뵙고 술도 자주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벌써 1년 6개월만의 만남이 되었습니다.
제자의 손님과 외삼촌의 손님이 합석하여 우럭탕을 추가하여 술을 마셨습니다. 다들 각자의 일정이 있어 2차는 하지 않고 대신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시골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절실합니다.
1년 전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디에 계셨나요? 누구와 뭘 하셨나요? 1년 전의 일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1년 전의 일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덕분입니다.
1년 전 어제는 가평의 연구실에서 목포로 책을 옮긴 날입니다. 지인이 가평 유명산 입구에 펜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지 3000평에 40개의 객실과 2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있습니다. 유명산 맑은 물이 옆에 흐르고 조경이 뛰어난 정원에는 야외 바비큐장도 여러 곳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펜션의 별채에 제 연구실이 있었습니다. 경기대 시절 2개의 연구실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경기대에서 가장 큰 연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평은 그보다 더 큰 공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왕국 같은 그 펜션에서 주말마다 힐링을 하며 꿈같은 4년을 보냈습니다.
가평에 있는 책을 광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다가 목포로 옮기는 것은 목포에 새 터전을 잡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이 공간도 임시지만 언젠가는 자리를 잡아가겠지요. 전세 기간이 딱 1년 남았네요.
1년 전 오늘 아파트 앞에는 철쭉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올해는 철쭉꽃의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늦네요. 사진을 보니 철쭉꽃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모교를 찾아갔네요. 건물과 운동장은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이 새롭게 변모했지만, 교문에서 내려오는 길은 그대로입니다. 벚나무가 조금 더 커 보일 뿐, 김명자 선생님이 바래다주던 그 길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추억이 또 다른 추억을 남깁니다. 1년 전의 사진이 1년 전의 정서적 기억을 환기시키고, 그 기억은 또 다른 50년 전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세요. 사진은 가장 확실한 추억의 창고입니다.
초등학교 2년 후배와 우리들의 모교인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산계 도갓집 근처의 주막집에 갔습니다. 막걸리 한 병 2000원, 돼지머리 고기 한 접시 3000원. 그렇게 5000원의 행복에 흐뭇해하던 순간이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등대표 성냥으로 모깃불 피우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시간여행은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그 시절로 다시 떠나는 마음의 여유를 권해 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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