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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봄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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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 2001년 9월호

 

 

 

 

 

 

 

 

 

 

배우새 직박구리새

대한민국의 시골은 물론, 도시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꽃이 있다. 진달래와 함께 봄을 알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 봄꽃이다. 이곳 남녘은 지금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개나리꽃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안산(鞍山)이 떠오른다. 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뒷산인데, 독립문에서 시작하여 무악재, 홍제동, 연희동, 이화여대, 연세대, 충정로에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남산과 고도가 똑같은 산으로 이때쯤이면 둘레길에 개나리꽃이 만발한다.

내 인생 황금기의 하나였던 경기대 시절, 4월 초순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안산에 올라 야외수업을 꼭 했다. 꼭 신입생들만 데리고 간다. 1학년 <기초연기> 수업 감각의 기억훈련과 개나리꽃의 개화가 비슷하게 맞물린다. 아니 어쩌면 개나리꽃의 개화에 맞춰 수업의 진도를 조절했는지도 모른다.

숭실대에서 경기대로 이직하면서 홍은동에서 독립문으로 이사를 했다. 마을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대학이 있었다. 아파트 16층에서 살았는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 안산 자락이 봄이 되면 온통 개나리 동산으로 변모한다. 오후 수업이 있을 때는 간혹, 안산 개나리 꽃길을 걸으며 출근을 하기도 했다.

개나리꽃을 보면 항상 그때가 떠오른다. 다중매체영상학부 연기전공 교수로 임명되어 실기 위주의 커리큘럼을 개발, 한국 최초의 연기학과를 출범시켰다. 스타니스랍스키연기원을 창설하여 실습공간과 소극장을 개설하고 교수진을 확보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하였다. 대학원에 한국 최초의 연기학과를 창설하였고 국제대학원을 예술대학원으로, 야간이던 학부를 주간으로 전환 시키는 행정력을 발휘하였다. 그 결과 경기대는 연기 분야의 특성화 대학으로 우뚝 섰으며, 학부의 경우 입시 경쟁률 1501의 경쟁력 있는 학과로 부상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 추진력은 대단한 것 같다. 연기학과장, 연기원장, 대학원 주임교수를 겸임하며 대학의 내실화와 학과의 특성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내 교육적 열정과 신념을 신뢰하는 대학 측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식년을 기해 미국으로 떠난다. 그 뒤의 이야기는 31일 인터뷰 촬영하는 MBC ‘나의 살던 고향은 목포편을 소개하면서 간략하게 언급해 궁금증을 해소시킬  예정이다.

추운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는 개나리를 심어도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한다. 엄동(嚴冬)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春化現象)’이라 말한다. 개나리는 물론이고 진달래, 철쭉, 백합 등이 여기에 속한다.

꽃만이 아니다. 보리도 가을에 파종해 설한(雪寒)을 넘긴 가을보리가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보다 맛이 있다고 한다. 이런 춘화현상이 꽃이나 보리만일까.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겨울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견실해진다. 미국에서 귀국하여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뽑아준 후배 교수가 복직을 반대하기도 했으며, 정부의 산하 기관장과 문화재단 대표이사에 도전했지만, 지자체장과 전형위원회의 농간에 휘말려 고배를 마셨다.

한국사회가 앞서가는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산하기관장 공개채용에 원칙과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면접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임기를 마치면서 마음을 비우고 목포에 내려왔다. 이제 꼭 1년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아름다운 꽃을 찾아 남녘의 산야와 강과 바다를 찾아 나설 것이다. 혹한을 견뎌낸 매화처럼, 명자꽃처럼, 개나리꽃처럼 인내하며 내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봄은 온다. 겨울을 견뎌낸 개나리꽃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봄날은 온다. 분명 봄날은 온다.

직박구리 배우새가 이번에는 개나리꽃 근처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여러분의 멋진 봄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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