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집을 주택,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을 유택(幽宅)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을 이사(移徙)라고 하고, 죽은 사람의 집, 다시 말해 묘를 옮기는 것을 이장(移葬)이라고 한다.
이사철이 왔다. 감옥에서 갓 나온 전직 대통령도, 청와대를 나오는 현직 대통령도, 곧 대통령이 되는 당선인도 이사를 해야 한다. 이름하여 ‘대통령의 이사철’이다.
아직 대통령이 아닌 당선자의 이사 장소를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모든 뉴스가 이사로 시작하여 이사로 끝난다. 이사 하나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고 ‘몽니’와 ‘고집’이 충돌한다.
대구로 가든, 양산으로 가든 대통령의 이사에 관심이 없다. 또 당선인의 이사에도 관심이 없다. 내가 걱정하는 건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 移轉)에 관한 일이다.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의 역사. 기구한 운명이다. 고려 숙종 때는 서울에 남경(南京)을 설치했고, 당시 별궁이 있던 터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이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한양에 궁궐, 종묘 등의 터를 정하면서 고려 남경의 궁궐터였던 그 자리를 다시 골랐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수난을 겪었다. 조선 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조선총독부를 짓고 뒤편엔 관사를 둬 6대 총독 미나미 지로가 관저(官邸)로 사용했다. 왕실의 기와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했던 곳이다.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미 군정도 사령관 관사로 썼다. 존 하지 중장이 1945년부터 1948년 때까지 관저로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948년 7월 24일부터 1960년 4월 26일까지 사용하며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렸다. 부정부패와 독재로 물러난 이승만 정권을 승계한 윤보선이 1961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차례로 관저로 사용해 왔다.
역사의 한가운데서 최고 권력자와 영욕을 함께한 이 청와대에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자가 2022년 5월 10일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예로부터 명당으로 주목한 청와대를 수많은 대통령 당선인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임금이 기거하는 궁궐의 기와가 푸른색이고 건물도 궁궐의 형태를 닮은 청와대는 구중궁궐과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의 개방을 환영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세종의 길 1번지에 어울리는 역사문화의 공간이 조성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용산으로의 이전도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전의 시기이다.
당선자는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상충하고 있는 작금의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다. 무조건 발목부터 잡고 보자는 여당 쪽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당선자의 진의를 무속으로 덧씌우는 비열한 인간들을 혐오한다. 한 가지만 확인하겠다. 용산으로 옮길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가?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여생을 고향에 봉사하고자 1년 전 낙향하여 목포에 왔다. 내가 무덤에 가기 전까지 살 집을 아직 구하지 않고 2년 계약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잇는 이유가 있다. 여기에 우선은 머무르면서 여러 곳을 물색하고 있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숙고하고 있다.
한 개인의 이사도 이러할진대, 한 나라의 정책과 미래를 이끌어갈 수뇌부들과 통치자의 집무실을 이전하는 일은 참으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이사는 가족의 합의, 이장은 집안 또는 문중의 합의,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가정이, 집안이, 나라가 평온해진다.
민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귀를 열지 않으면 눈이 어두워진다. 눈이 어두워지면 정신이 흐려진다. 정신이 흐려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국민이 힘들고 피곤해진다.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면 그 뜻에 따라야 한다. 실패한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민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가 주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땅은 그대로인데 풍수 탓만 한다. 용산도 ‘구중궁궐’이 될 수 있다. ‘에스맨’들에게만 둘러싸여 귀를 닫으면 용산도 구중궁궐이 된다. 사안에 따라 ‘노’ 할 수 있는 측근을 옆에 두어야 한다. 당선자에게 지금 가장 급한 것이 ‘노’할 수 있는 인간이다.
실패한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서로남불’인데 ‘내로남불’하지 말고 이 정권과 지금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정권이 지금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지금 피곤하다. 당선자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지금 불안하다. 이것이 지금의 민심이다!
이곳 남녘에는 남악(南岳)이 있다. 이 남악 혈맥에 진달래꽃이 만발한 부흥산이 있고, 그 곳에 ‘꽃굴’이 있다. 이 굴 근처를 오늘부터 ‘암와대(岩瓦臺)'라고 부르련다. 지붕이 바위로 되었으니 암와대인 것이다. 이 암와대에서 간혹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메시지를 던질 생각이다.
오늘은 일출이 없다. 안개가 자욱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암와대에서 태양이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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