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오거리가 있다. 옛날에는 목포에서 가장 ‘잘나가는’ 거리였고, 주먹깨나 쓰던 자들이 ‘놀던’ 거리다. 그곳에 ‘오거리’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박관서 작가가 막걸리 한잔하자고 했다. 최근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당선되어 목포 시인들과 함께 한잔하는 자리라고 했다.
그 오거리 식당 옆에 한국민속박물관이 있었다. 거기서 몇 컷 찍었다. 나중에 몇 시간은 찍을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오늘 올린 옛날 물건이나 장면들은 거기서 찍은 사진이다.
오거리 식당의 주인장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그래, 그래!
“유도했지요?”
그렇다고 했다. 1974년 겨울이니, 48년 전 일이다. 무술을 노동처럼 하던 고등학교 때 함께 운동하고 나서 얼음을 깨고 목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도 특기생으로 한양대 체대에 들어갔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그 유명한 ‘오거리’식당의 주인장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단골집이 될 것 같다.
상근이가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서 시인들과 헤어져 빨리 나왔다. 상근이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내가 생일이 2달 빠르다고 꼭 형이라고 부른다. 우리 나씨 문중들이 그렇다. 상근이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고향 이수 아재의 조문이다. 내가 다섯 살 때다. 아재가 날 데리고 목포에 갔다. 영화를 봤는데 무척 무서웠다. 제목과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데, 허장강 선생의 무서운 얼굴만 생각난다. 내가 최초로 본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중국집에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짜장면이다. 그렇게 맛있는 짜장면은 아직도 먹어보지 못했다. 6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짜장면의 미각이 내 몸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수 아재의 동생 백수, 매수 아재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술을 많이 마셨다. 나에게 최초의 영화와 짜장면을 선물하신 이수 아재의 명복을 빈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 블로그 글과 사진이 늦어졌습니다. 담배에 대한 정서적 기억은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멋진 주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