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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봉수산 매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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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홍, 임재필, 곽수정 연출가

 

봄을 기다리는 보재루

 

기념관 앞 홍매화

 

 

일지암 앞 홍매화
강만홍 교수의 최근 저서, 장편소설;숨춤

 

 

일지암에서 강만홍 교수와 필자
백매화의 꽃망울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긴 시간의 단위는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겁()으로 표현한다.

천 년에 한 번씩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집채만 한 바위를 옷깃으로 한 번 쓸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걸 반복해서 그 바위가 모래알만 해지는 시간을 일 겁이라 한다. 상상을 초월한 긴 시간이다.

범만경(梵網經)에서는 사람의 인연을 겁()으로 설명하며 인연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현세에서 소매 깃을 스치는 인연은 오백 겁, 한 나라에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일천 겁, 하루를 동행하기 위해선 이천 겁, 한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선 삼천 겁,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기 위해선 사천 겁,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기 위해선 오천 겁, 하룻밤을 같이 자기 위해선 육천 겁, 형제가 되기 위해선 칠천 겁,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팔천 겁, 형제자매가 되기 위해서는 구천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일만 겁이다.

아침에 강진에서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만 겁의 인연인 제자 중에서도 손안에 드는 제자다. 문화예술진흥원의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2년을 가르쳤다. 다산의 유배지였던 강진에 내려와 강진 연극의 토대를 다지고 있는 연극연출가다. 현재 모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런데 잘 아시는 분이라고 하며 전화를 바꿔준다. 미국 유학파로 서울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정년 퇴임한 연극인이다. 강만홍 교수. 인도와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뉴욕타임즈가 "강만홍은 숨을 멎는 듯한 순간을 만들어 준다"고 극찬한 춤꾼이자 배우, 연출가다. 숭실대학교 연기원에 강사로 모셨던 인연이 있다. 서로의 일로 연락이 끊긴 지 15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강만홍 교수와 제자 임재필 연출가가 목포 전망 좋은 집으로 왔다. 한 분이 더 함께 왔는데 여성 연극연출가다. 내가 터를 닦아놓았던 경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목포 출신이라고 했다.

집에서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지산식당으로 모셨다. 가격은 8천원인데 갈치조림과 김치찌개 그리고 반찬이 20가지가 나온다. 그 식당에서 직접 담근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 추억 그리고 대학의 예술교육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의선사와 다산 그리고 추사와 소치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다. 다산의 유배지 강진에 내려갔던 일, 강진에서 목포로 오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하면서 초의선사 탄생지로 안내했다.

사실 강 교수는 현재 계룡산의 어떤 암자에서 기거하면서 작품 구상과 충전을 하는 중이었다. 인도에서도 3년을 수학한 만큼 불교에 심취해서 초의선사를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그동안 연출 작품도 불교 색채가 많은 작품이었다.

이제야 찾아뵙겠습니다!”

초의선사 동상 앞에서 강 교수는 그렇게 고백했다. 임 연출가도, 곽 연출가도 초의선사 유적지의 건물과 시설에 압도되어 있었다.

초의선사를 중심으로 다산, 추사, 소치의 인연을 여기에서 연극으로 풀려고 합니다. 초의선사 역은 강 교수님이 적역입니다. 이게 다 필연이지요.”

출연 제의를 그렇게 했고, 그 자리에서 확답을 받았다. 고수는 고수를 안다. 초의선사 역의 최고 적격자를 쉽게 캐스팅한 것이다. 그리고 초의선사 역의 배우를 또 한 분 복수로 캐스팅하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아직은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연락도 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일이다.

운림산방은 관광객이 많다. 초의선사 탄생지는 어쩌다 몇 명이다. 왜일까? 이 문제를 많이 연구했고, 그 대안을 갖고 있다. 연극도 그중의 하나다.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는 없고 하드웨어인 건물만 웅장하다.

공간을 채워야 한다. 다산과 초의, 추사와 소치의 만남이 이곳에서 펼쳐져야 한다. 무안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강진과 해남 그리고 진도의 협력도 필요하다. 전라남도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초의선사 유적지의 일지암 앞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매화 꽃봉오리는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꼭 채울 때까지 오므리고 있다가 활짝 피어난다.

<주역>에서는 이걸 함장가정(含章可貞)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을 품고서 오래 참는다. 아름다움을 자기 속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다산, 초의, 추사, 소치의 시를 모아 낭독하는 공연으로 출발해도 좋다. 일만 겁 네 사람의 인연을 어찌 찰나(刹那)로 풀 수 있겠는가.

꽃망울이 맺혔다. 백매화에도 홍매화에도. 봉수산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긴 겨울의 혹독함을 묵묵히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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