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네.
새벽까지는 비와 함께 내리더니 창밖을 보니 제법 쌓였네.
추사와 초의의 우정에 대한 글을 쓸까, 초의와 다산의 사제지정을 쓸까, 초의, 추사, 다산 세 분에 대한 공통점을 쓸까 고민하다가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네.
3년 전 방문했던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 사진은 겨우 찾았는데, 글이 결코, 쉽지 않네. 업적도 업적이지만 워낙 저술이 많고 스토리가 많아 블로그 글로는 감당이 어렵네.
날은 밝고 뭔가 하나 올려야 하는데, 이제야 방향을 잡았네.
왕산에 있는 ‘초의선사탄생지’가 너무 썰렁해 거기서 뭔가 한판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보세. 친구 승희도 합세하여 ‘작은음악회’라도 개최해 보세.
이름하여 ‘초의선사와 함께하는 시가 있는 음악회’말일세.
그래서 자네가 초의가 시 몇 수를 낭송해야 하겠네. 물론 나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배우들을 동원하겠네.
그래서 시 한 수를 우선 보내네.
자네가 초의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분석을 하고 연구도 해 보시게.
대략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네.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어느 날 일지암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네. 떵떵거리던 가문의 아들이 절간의 중과 친해지자 걱정이 든 추사 부친이 초의를 실험할 겸 초의에게 일지암의 유천(乳泉)에 대해 물었네. 그러자 초의는 다음과 같은 시로 답했다네.
내가 사는 산에는 끝도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사방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채우고도 남는다
각자 표주박을 하나씩 들고 와 물을 떠 가거라
갈 때는 달빛도 하나씩을 건져가라.
중생들의 목마름을 다 채우고도 남으니 표주박 하나 들고 와 물을 떠 가라는 초의의 시에 추사의 부친이 무릎을 탁 쳤네. 갈 때는 덤으로 달빛 하나씩 건져가라는 표현이 절묘하지 않은가!
이 시 한 수로 추사의 아버지는 초의가 아들의 친구가 되어도 좋겠다는 확신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다네. 그리하여 추사와 초의의 우정은 글과 편지 그리고 차로 연결되어 그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네.
일로향실(一爐香室)은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가 소치 허련 편에 보낸 편액이네. 초의가 제주도까지 차를 보내준 데 대한 고마움의 정표라네. 초의가 써 준 그 편액이 해남의 일지암에 있는 그 편액이라네. 일로향실. ‘화로 하나 있는 다실’, 다시 말해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뜻이네.
지난 블로그에 소개했던 ‘다선’도 마찬가지네. 추사는 초의가 보내준 차를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글씨를 보냈고 시를 보냈다네. 앞으로 자네가 낭송해야 할 시가 엄청 많다네.
일로향실의 공간을 통해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서도 한가함을 얻으려 했던, 세속의 속됨과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그들의 정신과 우정이 멋지지 아니한가?
우리 시 낭송 가르치고, 시 읊고 노래하며 한바탕 놀아보세.
추사, 초의, 다산 이야기 소리극으로 만들어 봉수산 쩡쩡 울리게 만들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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