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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고

불갑사와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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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와 상사화

영광굴비는 알아도 불갑사를 모른다. 더구나 백제불교 최초의 도래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상사화 축제에 모여든다.

인도 스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바다를 건너 처음 도착한 곳이 법성포(法聖浦)이고, 그가 백제 땅에 처음으로 지은 절이 불갑사다.

도선국사가 도갑사·원갑사·불갑사 등 호남 3() 가운데 하나로 창건하고 그 중 으뜸이라는 의미로 불갑사(佛甲寺)라 이름 붙였다는 주장도 있다.

불갑사를 품고 있는 산의 이름은 원래 모악산(母岳山)이었다. 산의 이름이 불갑산으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가 불갑사의 건립에 있다. 불교의 '()'자와 육십갑자의 으뜸인 '()'자를 딴 불갑사가 지어지면서 산 이름도 불갑산으로 바뀐 것이다.

불갑사에는 꽃무릇과 상사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상사화에 대한 전설이 서너 개 있다. 그러나 불갑사와 상사화에 대한 전설은 역사에 가깝다. 스님의 이름과 사건이 매우 구체적이다.

* 주룡나루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사진 먼저 올리고, 갔다 와서 계속 쓰겠습니다.

법성포의 본래 지명은 백제 때아미타불(阿彌陀佛)’이 변형된 아무포(阿無浦)였다. 그 뒤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포(芙蓉浦)로 부르다가, 성자(마라난타)에 의해 불법이 전해진 포구라 하여 법성포(法聖浦)가 되었다고 한다.

영광(靈光)이라는 명칭도 불교와 무관하지 않다. 이 지명은 우주 법계와 억만 생령이 본래부터 함유하고 있는깨달음의 빛이라는 뜻이며, 불법을 들여온신령스럽고 은혜로운 고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불갑사와 상사화에 대한 전설로 들어가 보자.

마라란타가 떠난 170여 년 후, 불갑사에서 수행하던경운이라는 스님과 연계된 전설이다.

그는 피안의 세계를 꿈꾸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자 마라난타의 고향인 간다라 지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 무렵 인도는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이 불교를 국교로 삼고 불교를 중흥시키고 있었다.

대법회가 열리던 어느 날, 경운 스님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쿠샨 왕의 공주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첫눈에 반하게 된다. 경운의 풍부한 학식과 이국적인 외모에 반한 쿠샨 공주는 평민으로 변장하여 절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이 소문을 들은 왕은 격노하고 공주는 감금당해 외부 출입이 금지된다. 유학승인 경운도 추방령을 받게 된다.

출국을 앞둔 마지막 날 밤,

잠시 탈출에 성공한 공주는 경운에 품에 안기며~

헤어져야 할 운명이다.

경운은 백제로

공주로 궁궐로.

공주는 자기를 잊지 말라며 비단으로 장식한 선물 상자 하나를 준다. 그 상자 속의 물건이 무엇이었겠는가.

경운은 불갑사로 돌아와 경내에 상사화 알뿌리를 심었다. 땅에서 잎이 열리고, 입이 지면 꽃대가 나오고 꽃이 피었다.

세월이 지나 경운 스님은 열반하였다. 붉은 꽃은 점점 더 붉어지며 더 넓게 퍼져나갔다.

스님들은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경운 스님의 사연을 떠올리며 상사화라 이름 지었다. 이것이 불갑사 상사화의 전설이다.

신화와 전설은 문화콘텐츠의 소중한 소재가 된다. 중국의 장이모우 감독은 인상(印象) 시리즈라는 뮤지컬로 세계인을 중국으로 유인하고 있다. 불갑사의 상사화보다도 훨씬 원시적인 이야기다.

코로나 끝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상사화 전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영광은 격조 높은 문화의 고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다. 불갑사와 상사화만으로도 영광은 백제불교 최초의 도래지라는 그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광은 처음부터 글로벌한 도시였다. 나는 영광에서 단 한 명의 외국 관광객을 본 적이 없다. 코로나 이전에도.

문화관광으로 영광이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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