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글쓴이: 나상만
예술가와 야술가((野術家)의 경계
야술가여! 가면을 벗어라!
지금까지 밝혀진 성폭력 가해자 및 성추행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왕’ 노릇을 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짓눌러왔고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흔히들 ‘갑질’이라고 통칭한다.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희곡, 연기, 음악, 무대장치, 음향, 소품 등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된다. 따라서 이들 독립된 예술은 공연과 더불어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며, 연극을 위하여 모든 것을 종속(從屬)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예술을 조절하고 공연이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연출이며, 이렇게 하는 사람을 연출가라 부른다.
연극세계에서 연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더구나 연출은 배우를 선발하여 역할을 맡기는 권한과 배우의 성격창조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연출가는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데 있어 상당한 책임과 능력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책임과 능력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스승 스타니스랍스키는 “진정한 연출가는 교사, 작가, 행정가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요즘 성 추문에 휘말린 연출가 대부분은 연출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배우들을 농락하고 희롱했다. 아주 못된 ‘갑질’이다. 연극을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잘못 배운 그들이 자행한 만행은 ‘신성한 무대에 대한 배반’이다. 예술가인 배우를 탐욕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어찌 그들을 진정한 예술가로 부를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런 부류들을 ‘야술가(野術家)’로 규정해 왔다.
성추행에 지목된 대부분의 연출가나 배우들이‘대학교수’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명예를 좋아한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논문을 쓴다. 어떤 자는 남의 논문을 짜깁기하고 어떤 자는 돈을 주고 대필(代筆)하기도 한다. 논문의 형식조차 무시한 그들의 논문을 읽을 수가 없다. 돈벌이에 급급한 한국의 각종 대학원들은 그들에게 ‘학위’라는 또 하나의 권력을 준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 권력인‘교수’라는 타이틀을 안긴다.
물론 모두가 논문을 쓸 수 없는 자격 미달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두 사람 정도는 자기분야의 논문도 썼고 책도 냈다. 어떤 사람은 논문을 쓰지 않아도 연출이나 출연으로도 연구실적을 인정받았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러한 절차 필요 없이 학위가 없이도 교수가 되었다. 분명한 것은 그 ‘절차와 과정의 이면에 불공정과 부조리가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 타이틀을 거머쥔 ‘야술가’들에게 대학과 정부와 사회는‘심사위원’이라는 또 하나의 칼을 안긴다. 학생선발, 수업, 논문지도, 각종 상(賞)과 지원금의 평가, 교수선발, 관련기관의 채용과 심사, 면접심사에 막강한 권력을 위임한다. 끝나면 돈도 주고 술도 사 준다. 거기서 그들의 야성(野性)은 빛을 발한다. 미리 언질해 주기도 하고 심하면 대놓고 말한다.
교수선발이나 단체장의 채용에서 그들이 야합(野合)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첫째는 또 다른 권력(?)의 지시에 양처럼 따르는‘순종형’이다. 내정자(內定者)를 미리 정해 놓고 한 사람이 바람을 잡으면 모르는 척 순종한다. 둘째는 자신의 세계에서 왕 노릇을 하는 사람이 다른 동네에서 온 왕(?)들에게 부탁하는‘청탁형’이다. 왕들의 세계에서는 어찌나 호흡이 잘 맞는지 모른다. ‘청탁’이 언젠가 품앗이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의 경우는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처단형’이다. 이때 평소 감정이 있는 지원자나 똑똑한 소신파는 가차 없이 그들의 칼날에 날아간다. 실력이나 스펙, 심지어 심사기준도 무용지물이다.
성폭행 및 성추행의 폭로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추행 공화국의 진가가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과하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시 인정하는 ‘순진형’과 ‘자살형’은 그래도 양심파다. 처음에는 버티다가 추가 폭로가 나오자 체념하는 ‘번복형’, 끝까지 버티는‘재판형’도 있고, 심지어는 행적을 감춰버리는 ‘도주형’도 있다.
한국 사회가 미투 운동으로 심각한 성장통을 안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되어 가고 있는 증거다. 모두에게 아픔을 주고 있지만 그 운동의 순기능을 고려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믿는다. 필자에게 응원의 글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서울의 모 고교 교장 선생님은 우리 사회가 ‘미투 운동 이전의 시기와 이후의 시기’로 확실하게 구분될 만큼 “그동안 묵인되어 왔던 고질적인 갑질, 더 나아가 슈퍼 갑질 문화가 근절되어야 한다.”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왔다.
미투 운동을 단순한 성 스캔들로 재단(裁斷) 하는 일은 곤란하다. 필자가 가장 저주하는 부류가 있다. 성범죄를 폭행이 아니고 ‘사랑’이나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우기는 ‘철판형’이 그것이다. 가족과 자녀에 대한 배신이며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그들을 증오하며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타니스랍스키와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 1878-1927)의 만남과 그 일화를 소개한다. 특히 덩컨을 예술의 동반자로 인식한 스타니스랍스키의 언행은 지금도 귀감(龜鑑)으로 남는다.
위대한 거장의 모습
스타니스랍스키와 덩컨은 그들의 각별한 만남으로 상대의 예술에 서로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각자의 자서전에 상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니스랍스키는 덩컨에게 아주 각별한 존재였다. 덩컨의 모스크바 공연에서 관객과 무용수로 알게 된 스타니스랍스키와 덩컨은 아주 오랜 기간 행로를 함께 해 온 동지와 같았다. 스타니스랍스키는 그의 <나의 예술생애>에서 덩컨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우리는 몇 마디의 말을 건네자마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덩컨이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서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녀가 두 번째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우리 공연을 보러 극장(모스크바 예술극장)에 왔다. 나는 그녀를 귀빈으로 영접했다. 환영회는 극단 전체의 행사처럼 진행되었다. 모든 단원이 배우로서 사랑을 전하고 경의를 표현했다.
덩컨도 자신의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스타니스랍스키의 자서전을 인용하여 적고 있다. 자신의 예술을 논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했고, 정리된 스타니스랍스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컨의 다음 말은 스타니스랍스키에게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춤을 출 수 없어요. 무대에 나가기 전에 나는 반드시 정신에 어떤 모터를 정착해야 해요. 그 모터가 내면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리, 팔, 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요. 그러나 내 정신에 모터를 달 시간을 주지 않으면 나는 춤을 추지 못해요”
스타니스랍스키 역시 배우가 무대에 나가기 전에 자신의 정신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모터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 문제에 집중하면서 ‘남자 거장’은 ‘여자 거장’의 공연과 연습을 면밀히 관찰하게 된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녀는 자기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그녀의 전이(轉移)된 감정이 언제 그녀의 얼굴에 첫 변화를 주는가를 관찰했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자신의 영혼에서 우러난 것을 밖으로 표현해 내는 일이 언제인가를 관찰한 것이다.
덩컨의 연습과 공연을 지켜보면서 거장은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술에 대한 두 거장의 대화를 통해 그들은 그들이 찾고 있었던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극과 무용이 다른 장르이지만 동일한 ‘공연예술’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스타니스랍스키는 후에 “배우는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정신적 분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와 “배우는 등장인물의 과거를 안고 무대에 등장해야 한다.”는 위대한 원칙을 주장하게 된다. 대사의 의미도 모으고 대사만 외워서 주고받는 것이 연극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에게 던지는 바가 크다.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덩컨은 계속해서 고든 크레이그(Edward Gordon Craig, 1872-1966)라는 이름을 언급한다. 덩컨은 크레이그를 천재로 인정했으며 현대 극장무대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스타니스랍스키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 크레이그를 모스크바 예술극장에 초청하여 <햄릿>의 무대를 맡긴다. 그러한 창조적 만남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예술적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앞서가는 사람을 비방하며 경쟁자를 단칼에 처단하는 한국의 풍토와 너무나 다른 것이다. 덩컨은 기록한다.
“그에게 자극을 받아 나의 생각을 이론화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 싸늘하고 눈 덮인 공기, 러시아 음식, 그중에서도 특히 캐비아는 토드와의 정신적인 사랑으로 야기된 쓸데없는 병을 말끔하게 씻어 주었다. 이제 내 존재는 강력한 인격과의 만남을 소망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내 앞에 서 있던 스타니스랍스키에게서 나는 그런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날 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깨끗하고 잘생긴 용모, 넓은 이마, 머리끝이 희끗희끗 세어가는 검은 머리였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에게리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떠날 때가 되자 나는 내 두 손을 그의 양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의 강한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당겨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그는 내 키스를 부드럽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매우 놀란 모습이었다. 마치 그가 기대했던 최악의 일인 양.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그를 더 끌어당기자 그는 몸을 뒤로 빼면서 놀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하죠?”
“아이요?”
“아이, 물론 우리 아이죠. 그 아이는 어떻게 하죠? 알겠소?”
그는 묵직하고 건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내 감독 밖에서 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게 현재의 내 가정형평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덩컨은 폭소를 터트렸다. 스타니스랍스키는 화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호텔방을 뛰쳐나갔다. 웃어보였지만 그녀 역시 화가 났다.
“스타니스랍스키는 공연이 끝난 후 내 방에 오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중략) 나는 스타니스랍스키의 강한 덕성이 잠깐 무너진 것은 요녀 키르케의 농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덩컨은 스타니스랍스키의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깔깔대며 입을 열었다.
“호호호...... 바로 그래요. 그이는 정말 그래요. 그이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인식해요.”
<후기>
스타니스랍스키는 그의 명저 <배우의 작업>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가장 좋은 제자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배우이고
연극을 위한 내 노력의
충실한 조력자인
마리아 빼뜨로브나 릴리나에게
이글을 바친다.
세계 무대예술을 혁신한 거장의 모습이 이렇게 가정적일까. 그는 가족과 아내와 사회와 무대를 동시에 존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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