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나상만
추풍낙엽(醜風落葉)의 길목에서(2)
-잠룡((潛龍)의 추락(醜落)을 보면서-
예견된 일이지만 성추문 사건이 마침내 정치권에서 터졌다. 그 충격과 위력은 메카톤급이다. 또한 그 후폭풍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진입한 느낌이다. 차기 대권주자의 선두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던 잠룡도 ‘미투’ 운동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추풍낙엽(醜風落葉)이 되어 버렸다. 정말이지 추락(醜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스크린의 별(스타)도 승천하는 용(대권주자)들도 여지없이 추락의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다.
우보(牛步) 도지사 안희정(安熙正). 공교롭게도 그가 추문의 주인공으로 대한민국 뉴스의 중심에 선 순간, 평양에서는 대북특사단 일행이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주최하는 만찬장에서 축배를 들고 있었다. ‘이명박근혜’가 굳게 닫아버린 빗장을 열고서.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어, 그러한 사실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 그래도 신(神)은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것 같다. 아니, 우리 국민은 현명했다. 아니다. 민주당 당원들이 현명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나와 우보와의 직접적인 만남은 없다. 그렇다고 관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언젠가 충청남도의 산하기관인 ‘충남문화산업진흥원’의 원장 공개모집에 원서를 낸 적이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서류심사에 합격하여 3배수 안에 들었고, 취종후보로 올랐다. 그러나 우보는 나를 낙점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모든 산하기관 기관장들은 지자체장의 선거 참모들도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지역의 일거리 창출과 관광객 유입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도, 문화정책의 구체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도 ‘직무수행계획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서류심사와 면접은 요식행위이고, 심사위원은 기관장이 점찍어 준 후보에게 우호적일 뿐이다. 이건 다년간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우보와의 두 번째 인연도 결국은 불발로 끝났다.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에 응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보에게 ‘미래의 정치 지도자’라는 희망을 걸고 있었다. 내가 ‘직무수행계획서’에서 제시한 정책은 ‘충남’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핵심적인 ‘킬러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보의 눈에는 그러한 정책이 보이질 않았을 것이다. ‘특정인’을 낙점시키기 위해서는 나 같은 사람은 단지 ‘들러리’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은 대표이사에 임명되자 제법 의욕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떤 단체로부터 상도 받았고, 몇 가지 콘텐츠는 눈여겨 볼만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가 사표를 냈다. 지역 신문들이 여러 가지 추측 기사를 썼고, 나는 그 진위여부를 분석해 보진 않았다.
마침내 ‘우보와의 세 번째 인연’이 이루어질 기회가 왔다. 새로운 대표이사 공모 기사가 나왔다. 그 사이 우보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치를 확실하게 굳히고 있었고, 나도 우보를 ‘움직일 수 있는 우군’을 확보하고 있었다. 내가 취한 행동은 그 ‘우군’에게 ‘특정인’이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것이었다.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우군으로부터 정보가 왔다.
“시끄럽습니다. 예술인들이 진흙탕 싸움이 되어 임명권자가 재단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나는 그 공모에 지원하지 않았다, 누가 낙점되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의 그 큰 뉴스를 접했다.
충격!
우리 국민 모두가 받는 그 충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루 종일 낮술을 마셨다.
우보가 도청 대회의실서 민선 5기 출범 2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소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호랑이와 같은 시각으로 도정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우보호시’라는 사자성어로 소회를 밝혔던 일이 새롭다. 이 말은 원래 ‘호시우보(虎視牛步)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에서 나왔다. “야당의 진보적 젊은 도지사로서 ‘우보호시’의 자세로 도정의 연속성 유지와 주권자의 권리 회복, 생동감, 생산성 높은 도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피력한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나는 뜻한 바 있어 ‘정치’와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을 결합시켜 ‘스타니스랍스키 리더십’을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내가 강의 첫 시간에 했던 '주제'는 “정치를 왜 하는가? 정치인은 ‘초-초과제(超超課題, Super-Super Task)’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정치도 ‘결과’가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들로부터, 지지자로부터 ‘신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신뢰’는 ‘지지도’로 연결된다.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을 무시한 연극계의 ‘큰손’ 이윤택이 ‘추풍낙엽’이 되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을 무시한 정치계의 ‘잠룡’ 안희정이 ‘추풍낙엽’이 되어 쓰러졌다. 두 ‘낙엽’들을 보는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낙엽은 다 쓸어야 한다. 이것이 ‘미투’ 운동의 본질이고 그 지향점이다.
우리나라의 ‘채용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안희정은 그래도 ‘양반’인지 모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불평등’과 ‘불공정’이 난무하고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우보가 이 말을 명심하고 ‘호시(虎視)’했다면 오늘의 추락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왜 ‘수행비서’로 ‘여성’을 선택했을까?” 그게 나의 의문이다.
모든 정치인이 새겨야 할 말이다. 아니 모든 조직에서 명심해야 할 격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우보의 뒤늦은 후회와 사과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는 피해자에게만 사과했다. 국민에 대한 우롱이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배반이며 아내에 대한 배신이다 . 나는 ‘안희정’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그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도 성찰해 보길 권고한다.
우보(牛步)의 실수를 반면삼아 ‘의식혁명’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것이 ‘촛불’ 정신이고 ‘미투’ 운동의 최종점이다. 연극인인 내가 감히 정치인들에게 충고한다. 스타니스랍스키의 유훈(遺訓)을 비틀어서. 또 다른 우보(愚寶)들이 이 땅에 재탄생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면서.
“정치 속의 자신이 아니라, 자신 속의 정치를 사랑하라”
2018.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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