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 이윤택’ 사건을 보면서
‘밀양꼴춤’의 이수자 1호 이윤택과 ‘추행 인간문화재’ 1호 하용부의 위선적 가면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동시대에 작가와 연출을 하는 연극인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내가 그토록 저주했던 박정희의 딸이 뱉었던 그 오물스러운 단어 ‘참담’을 나까지 쓰다니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
대학로는 지금 멘탈 붕괴 상태에 빠져있다. 그는 자신이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극작가라는 착각으로 희곡을 썼고 배우들의 창조적 연기를 무시한 그의 논두렁식 연출로 1988년 서울무대에 등장하였다. 거칠며 파격적이었던 그의 연극문법은 몇몇 평론가들의 극찬과 ‘문화 게릴라’라는 언론의 과대포장 속에서 그는 어느 사이 한국연극의 ‘거장’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순혈통의 연극인이 아니다. 그는 연극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심한 한국의 대학들은 그에게 ‘겸임교수’ ‘초빙교수’라는 타이틀로 강의를 맡겼고, 그는 자신의 학력 콤플렉스를 보상 받으며, 급기야는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를 무시하며 자신의 독특한(?) '마사지 메소드' 발성법을 과시해 왔다.
‘아직도 스타니스랍스키인가?’
그가 주관했던 세미나의 주제였다. 나는 그가 스타니스랍스키의 심오한 연극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의 연극을 보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연출한 연극 모두가 졸작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진 않다.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의 작품이 배우들의 창조성을 무시한 연출 위주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그의 취향은 그의 성격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배우를 ‘인형’ 취급하는 독재적인 연출로 일관해 왔다. 그가 스타니스랍스키를 깔고 뭉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는 내 앞에서 ‘친절’을 베풀면서도 뒤에서는 나를 비판했는지 모른다.
그가 스타니스랍스키를 제대로 공부했었다면 ‘오늘의 추락’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성인’으로 추앙받던 그가 ‘성추행’ 파문으로 추락하여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래서 스타니스랍스키는 “예술 속의 자신이 아니라, 자신 속의 예술을 사랑해야 한다”고 설파했으며 이말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모토가 되었다. 그렇다. 자신 속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창조 과정 그 자체를 중요시하고, 예술 속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작품의 결과에 집중한 이윤택의 추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명성’과 ‘인기’라는 견고한 성 아래 잠행되고 있었던 ‘문화 권력’의 추악한 민낯이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슬픈 일이다. ‘연극은 시대와 사회의 거울’인데 ‘연극이 사회의 추태’가 되어 버렸고, 많은 국민들이 그의 ‘관습’을 ‘모든 연극인의 관습’으로 치부해 버릴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무대의 영원한 스승 스타니스랍스키는 연극을 “극중 등장인물의 내면적인 인간생활을 창조하고, 이 생활을 무대에 예술적으로 구상화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하고 무대 예술가들에게 철저한 ‘윤리’와 ‘규율’을 강조했으며 “예술의 주요 목적에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종속시키는 능력”을 연극인들에게 요구했다. 그리하여 그는 “분장실에서 사소한 소시민적 생활을 하면서 무대에 나온 순간 거짓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동일한 관점에서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배우의 ‘규율’만을 강조하고 ‘윤리’를 무시한 이윤택의 추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사이비 연극의 ‘흥행사’였지 결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를 ‘스타’로 만든 언론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연극인 여러분!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사이비 연극인들을 무대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예술을 가장하며 추악한 돈놀이와 추행을 일삼아 온 제2의, 제3의 ‘유희단거리패’를 추방해야 합니다. 한국무대의 순수성을 위하여. 그리고 다시 스타니스랍스키의 유훈과 시스템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철저한 윤리와 규율로 자신을 가다듬고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해서 함께 나갑시다. 한국연극의 건강한 토양이 굳건해지는 그 날을 위하여 함께 갑시다.
문화 권력에 희생당한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보냅니다.
제 졸작 중에 <멍키열전>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문학작품 속의 원숭이 주인공들이 모여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로 인간 세계를 풍자하고 조롱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연극이 꼭 누구를 지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땅의 건강한 연극인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길 기대하면서 빠른 기일, 공연 동영상이나마 공개할 예정입니다. 성난 국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희망하면서.
2018. 02. 20 . 연극인 나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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