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위대한 "무대인생" "배우예술" 60년
입력 : 2000/09/01 19:07
러시아가 낳은 불세출의 연극인...연기훈련의 영원한 바이블
●나의 예술인생, 스타니스랍스키 지음, 강량원 옮김, 이론과 실천
연극을 배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타니스랍키는 일반명사다. 그가 체계화시킨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은 연기의 기초 중 기초로 통한다. 그 불세출의 러시아 배우이자, 연출자, 연극교육자 스타니스랍키의 자서전이 마침내 번역됐다.
「나의 예술 인생」에는 예술과 연극에 눈뜬 소년시대부터 긴 고투를 거쳐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무대를 창조하고, 다시 나중에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배우예술의 체계를 정리할 때까지, 근 60년에 걸친 그의 생애의 주요한 시기가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 통해 우리는 그의 예술과 삶을 머리로서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스타니스랍스키가 살았던 러시아는 격동과 파란의 시대였다. 그는 1905년과 1917년, 두 번의 혁명을 체험하였다. 이런 시대에 예술도 새로운 것과 낡은 것과의 격렬한 싸움의 무대였고, 그 자신의 생애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 투쟁 속에서 그는 항상 시대의 새로운 것을 거침없이 드러냈고, 그의 예술은 낡은 전통에 대한 대범한 도전이었다.
그의 예술의 혁신적 의의는 체홉의 ‘갈매기’ 상연을 둘러싼에피소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1896년 알렉산드르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 최고의 배우들이 공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희곡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체홉은 극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대로 끝났다면, 어쩌면 우리들은 ‘세자매’나 ‘벚꽃동산’ 같은 그의 훌륭한 희곡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후 스타니스랍스키와 예술극장에 의해 상연된 ‘갈매기’는 관객의 열광 속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예감으로 가득 찬 체홉의 진가는 스타니스랍스키의 새로운 방법에 의해 다시 탄생되었고, 이 성공을 기념하여 ‘갈매기’는 지금도 예술극장의 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연극에 미친 스타니스랍스키의 공헌은 배우예술의 혁신에 있다. 그는 배우창작의 비밀에 메스를 가하고 배우예술의 객관적인 법칙에 골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가 후에 배우기술과 연극교육의 과학적 방법론인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으로 결실 맺었다. 배우가 역할의 형상을 창조하고, 그 형상 속에 인간의 정신적인 삶을 열며,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 예술적 형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돕는 이 시스템이야 말로 연기훈련의 영원한 바이블로 손색이 없다.
스타니스랍스키의 이 책은 순수한 자전문학으로 봐도 대단히 훌륭한 것이다. 그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시대, 그 속에서 성실한 예술적 탐구를 계속한 동시대인들의 모습이 책속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스타니스랍스키의 체취가 남아 있는 모스크바 슈우킨 연극대학에서 연출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극단 「동」에서 활동하는 현장 연극인이 의해 번역된 점에서 믿음직스럽다. 깔끔한 번역이 스타니스랍스키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느껴질 뿐 더러, 주석이 풍부한 러시아전집에서 직역돼 학술적 가치 또한 동반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스타니스랍스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모스크바 연극유학생들의 귀국과 더불어 그들의 활동이 연기교육과 무대작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타니스랍스키 연기학교가 개설되었고, 다른 대학들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스타니스랍스키에 대한 관심과 수용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연기교육과 연극무대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나상만·경기대 교수·연기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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