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멍키열전

에피소드4. 털없는 원숭이등을 위한 우화

728x90

 

 

                                           에피소드 4.

                               털없는 원숭이를 위한 우화

 

 

 

        손오공과 하누만, 버질, 이수르이 곡예 연습용 매트를 들고 나온다.

        손오공의 지휘에 따라 구르기를 한다.

        각자의 특기 종목이 있다. 손오공은 공중제비, 하누만은 옆 돌기, 버질은 뒤로 돌기, 이수르는 구르기 등이다.

        이어 손오공의 리드로 불구나무서기를 한다.

        쓰러지는 하누만, 버질, 이수르. 부러운 듯 발로 박수를 치는 손오공을 지켜본다.

 

손오공: 이수르! 예술이다. 예술!

버   질: 그런데 손오공! 너는 왜 발로 박수를 치니?

손오공: (일어나며) 인간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

하누만: 하긴 그래. 우리가 네 발로 걷는데, 앞발이면 어떻고 뒷발이면 어떻냐!

버   질: 손오공, 위대한 발견이다. 우리가 인간과 다른 점! 인간은 손으로만 박수를 치지만 우리는 발로도 박수를 칠 수 있어.

하누만: 손오공, 나도 가르쳐 줘.

버   질: 나도.

 

         이수르도 재미있는 듯 합세한다.

        그들 재미있는 듯 박수를 친다.

 

손오공: 그럼 이번에 337박자로. 내 걸음에 맞춰.

손오공의 발걸음에 따라 나머지 원숭이들이 발로 박수를 친다.

손오공: 제법인 걸. 그런데 그건 기초야. 너희들 이거 따라할 수 있어?

손오공이 공중제비를 하면서 발로 박수를 친다.

버질: 손오공. 너는 왜 모든 걸 잘하니?

하누만: 손오공은 천도복숭아를 먹었기 때문이야.

이수르: 손오공, 천도복숭아는 어떻게 생겼어?

손오공: (함께 앉으며) 설명하기가 어려워.

버  질: 당근처럼 생겼어?

손오공: 그렇게 길지 않아.

하누만: 그럼 바나나처럼 생겼나?

이수르: (주먹을 쥐어 보이며) 그럼 이렇게 생겼어?

손오공: (두 손을 둥글게 모아) 이렇게.

다   들: 이렇게?

버   질: 맛은 어때?

손오공: 무척 달아.

이수르: 포도처럼?

손오공: 그래. 하지만 더 달고 시진 않아.

하누만: 어떤 맛일까, 시지 않고 달다는 맛? 아 먹고 싶다.

버   질: 나도.

이수르: 나도 먹고 싶어. 빼아트리체한테 구해달라고 하면 먹을 수 있을까?

손오공: 하지만 지상에 있는 거하고 거기에 있는 건 완전 달라.

버   질: 아 먹고 싶다.

하누만: 손오공, 자기가 다시 한 번 갔다가 오면 안 될까?

손오공: 그럼 몇 백 년이 지날 건데?

이수르: 난 기다릴 수 있어. 천도복숭아만 먹을 수 있다면.

버  질: 나도 기다릴 수 있어.

손오공: 좋아. 내 말만 잘 듣는다면 고려해 보지?

하누만: 좋아.

이수르: 나도 네 말 잘 들을래.

손오공: 그럼 지금부터 내 말 잘 듣는 거다?

모   두: 그래.

하누만: 그런데 빼아트리체는 왜 안 오는 거지?

손오공: 나도 줄곧 그 생각만 했어.

버   질: 설마 우리들을 두고 도망간 거 아닐까?

이수르: 설마?

손오공: 뭔가 음모가 있어. 우리 원숭이들만 남기고 말이야.

이수르: 나도 침팬지잖아.

하누만: 대신 너는 사람 말은 하지 못하잖아.

 

         (침묵)

 

이수르: 너희들 모두 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아니?

손오공: 니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버  질: 정말?

이수르: 그래. 난 인간의 말을 알아들어. 하지만 배우지 않을 뿐이야.

하누만: 왜?

이수르: 비밀이야.

손오공: 내 말 잘 듣기로 했잖아.

이수르: 어떡하지?

버   질: 말하면 돼?

이수르: 어휴, 천도복숭아도 먹고 싶고, 비밀은 말하고 싶지 않고...

손오공: 어휴, 답답해. 너 정말 천도복숭아 먹고 싶지 않다는 거지?

버   질: 나도 너한테 주지 않을 거야.

하누만: 나도.

이수르: 말할게. 대신 비밀은 지켜주어야 해.

손오공: 애들이 네 비밀을 지켜주지 않으면 나도 애들한테 천도 북숭아를 주지 않을 거야.

이수르: 좋아. 말할게. 꼭 비밀은 지켜야 해?

모두들 그렇다고 한다.

이수르: 나는 자바섬에서 태어났어.

 

음악 8 / 이수르의 고백

 

           (무대 왼쪽 마네킹의 모자를 쓰고, 의인화하여)

          내 첫 번째 주인은 서커스 단장이었고, 그가 흥행에 실패하여 파산되자 어떤 음성언어학자에게 팔려 나갔지. 내 두 번째 주인은 ‘원숭이는 어떤 이유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는 인류학적 가정을 신봉하고 있었어. 인간인 우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되자 발성기관과 뇌의 언어 중추가 쇠퇴했다. 그 결과, 말을 하는 인간과 말을 하지 않게 된 인간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고, 말을 하지 않게 된 우리 <인간>의 말은 제대로 조음되지 않는 ‘소리 지르기’가 되어 동물의 지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버   질: 그렇담 우리가 인간의 한 종류라는 것이지?

이수르: 글쎄. 난 우리가 인간이라기보다도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라는 사실을 더 신봉해.

손오공: 멋진 표현이다. 털 없는 원숭이.

하루만: 하지만 인간에게도 털이 있잖아. 거기엔.

손오공: 그렀네! 정말. 거기엔 있네!

이수르: 털 없는 원숭이는 말을 하면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한 거야. 서로를 속이고 아부하고 온갖 궤변을 생산해 내고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전쟁을 자행하면서까지 말이야. 나는 내 주인에게 음성훈련을 3년이나 받았어. 하지만 난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지 못했어. 그래서 단어 하나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지.

하루만: 그건 무척 쉬운 건데?

손오공: 난 태어나자마자 인간 말을 도통했는데?

버   질: 넌 천재니까 그렇지. 난 10년이 걸렸어.

이수르: 주인은 나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했어. 사실은 단어정도는 몇 마디 할 수 있었는데, 말을 하지 않았지.

버   질: 아 채찍질! 몸서리친다. 말하면 될 건데 왜 말하지 않았니?

이수르: 난 눈물과 절대적인 침묵으로 반항했어. 신음조차 내지 않았지.

손오공: 왜?

이수르: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복종을 강요했기 때문이지.

하루만: 넌 참 독한 면이 있구나.

버   질: 말하면 될 건데!

이수르: 나는 내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갈 심산이었지.

버   질: 원숭이에게 무덤이 어디 있니?

이수르: 어느 날 주인의 태도가 달라졌어. 나에게 충성심과 탐식성을 자극하기 위해 “나는 네 주인이다. 너는 내 원숭이다” 이 말을 귀에 수없이 반복했어. 그때마다 난 눈꺼풀을 내리깐 채 그의 말을 인정했지. 하지만 소리를 내기는커녕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았어.

하루만: 지독하다. 이수르.

이수르: (다시 침팬지로) 주인이 나에게 제스처를 다시 시용했어. 하지만 그의 과도한 행동에서 비롯된 나의 절망적인 침묵은 여전히 계속되었지. 우리 종족이 수 만 년 지속했던 우리들의 침묵 말이야.

 

       사이.

 

이수르: 인간은 사악하고 야만적인 폭정을 통해 나무를 지배했던 우리 네발짐승의 가족들을 에덴으로부터 타도하고 그 숫자를 줄이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삼기 위해 암컷들을 잡아가 버렸으며, 서커스를 강요하고, 실험실의 도구로 이용하고 하고 있잖아.

 

        사이

 

이수르: 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의 말은 유인원의 옛 영혼을 제거했지. 그래서 난 털 없는 원숭이의 말을 배우지 않는 거야. 그들은 영혼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털을 제거하는 진화과정을 거쳐 그들의 맨살을 옷으로 감추고 있는 거지.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8-1 / 전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