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털없는 원숭이를 위한 우화
손오공과 하누만, 버질, 이수르이 곡예 연습용 매트를 들고 나온다.
손오공의 지휘에 따라 구르기를 한다.
각자의 특기 종목이 있다. 손오공은 공중제비, 하누만은 옆 돌기, 버질은 뒤로 돌기, 이수르는 구르기 등이다.
이어 손오공의 리드로 불구나무서기를 한다.
쓰러지는 하누만, 버질, 이수르. 부러운 듯 발로 박수를 치는 손오공을 지켜본다.
손오공: 이수르! 예술이다. 예술!
버 질: 그런데 손오공! 너는 왜 발로 박수를 치니?
손오공: (일어나며) 인간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
하누만: 하긴 그래. 우리가 네 발로 걷는데, 앞발이면 어떻고 뒷발이면 어떻냐!
버 질: 손오공, 위대한 발견이다. 우리가 인간과 다른 점! 인간은 손으로만 박수를 치지만 우리는 발로도 박수를 칠 수 있어.
하누만: 손오공, 나도 가르쳐 줘.
버 질: 나도.
이수르도 재미있는 듯 합세한다.
그들 재미있는 듯 박수를 친다.
손오공: 그럼 이번에 337박자로. 내 걸음에 맞춰.
손오공의 발걸음에 따라 나머지 원숭이들이 발로 박수를 친다.
손오공: 제법인 걸. 그런데 그건 기초야. 너희들 이거 따라할 수 있어?
손오공이 공중제비를 하면서 발로 박수를 친다.
버질: 손오공. 너는 왜 모든 걸 잘하니?
하누만: 손오공은 천도복숭아를 먹었기 때문이야.
이수르: 손오공, 천도복숭아는 어떻게 생겼어?
손오공: (함께 앉으며) 설명하기가 어려워.
버 질: 당근처럼 생겼어?
손오공: 그렇게 길지 않아.
하누만: 그럼 바나나처럼 생겼나?
이수르: (주먹을 쥐어 보이며) 그럼 이렇게 생겼어?
손오공: (두 손을 둥글게 모아) 이렇게.
다 들: 이렇게?
버 질: 맛은 어때?
손오공: 무척 달아.
이수르: 포도처럼?
손오공: 그래. 하지만 더 달고 시진 않아.
하누만: 어떤 맛일까, 시지 않고 달다는 맛? 아 먹고 싶다.
버 질: 나도.
이수르: 나도 먹고 싶어. 빼아트리체한테 구해달라고 하면 먹을 수 있을까?
손오공: 하지만 지상에 있는 거하고 거기에 있는 건 완전 달라.
버 질: 아 먹고 싶다.
하누만: 손오공, 자기가 다시 한 번 갔다가 오면 안 될까?
손오공: 그럼 몇 백 년이 지날 건데?
이수르: 난 기다릴 수 있어. 천도복숭아만 먹을 수 있다면.
버 질: 나도 기다릴 수 있어.
손오공: 좋아. 내 말만 잘 듣는다면 고려해 보지?
하누만: 좋아.
이수르: 나도 네 말 잘 들을래.
손오공: 그럼 지금부터 내 말 잘 듣는 거다?
모 두: 그래.
하누만: 그런데 빼아트리체는 왜 안 오는 거지?
손오공: 나도 줄곧 그 생각만 했어.
버 질: 설마 우리들을 두고 도망간 거 아닐까?
이수르: 설마?
손오공: 뭔가 음모가 있어. 우리 원숭이들만 남기고 말이야.
이수르: 나도 침팬지잖아.
하누만: 대신 너는 사람 말은 하지 못하잖아.
(침묵)
이수르: 너희들 모두 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아니?
손오공: 니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버 질: 정말?
이수르: 그래. 난 인간의 말을 알아들어. 하지만 배우지 않을 뿐이야.
하누만: 왜?
이수르: 비밀이야.
손오공: 내 말 잘 듣기로 했잖아.
이수르: 어떡하지?
버 질: 말하면 돼?
이수르: 어휴, 천도복숭아도 먹고 싶고, 비밀은 말하고 싶지 않고...
손오공: 어휴, 답답해. 너 정말 천도복숭아 먹고 싶지 않다는 거지?
버 질: 나도 너한테 주지 않을 거야.
하누만: 나도.
이수르: 말할게. 대신 비밀은 지켜주어야 해.
손오공: 애들이 네 비밀을 지켜주지 않으면 나도 애들한테 천도 북숭아를 주지 않을 거야.
이수르: 좋아. 말할게. 꼭 비밀은 지켜야 해?
모두들 그렇다고 한다.
이수르: 나는 자바섬에서 태어났어.
음악 8 / 이수르의 고백
(무대 왼쪽 마네킹의 모자를 쓰고, 의인화하여)
내 첫 번째 주인은 서커스 단장이었고, 그가 흥행에 실패하여 파산되자 어떤 음성언어학자에게 팔려 나갔지. 내 두 번째 주인은 ‘원숭이는 어떤 이유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는 인류학적 가정을 신봉하고 있었어. 인간인 우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되자 발성기관과 뇌의 언어 중추가 쇠퇴했다. 그 결과, 말을 하는 인간과 말을 하지 않게 된 인간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고, 말을 하지 않게 된 우리 <인간>의 말은 제대로 조음되지 않는 ‘소리 지르기’가 되어 동물의 지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버 질: 그렇담 우리가 인간의 한 종류라는 것이지?
이수르: 글쎄. 난 우리가 인간이라기보다도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라는 사실을 더 신봉해.
손오공: 멋진 표현이다. 털 없는 원숭이.
하루만: 하지만 인간에게도 털이 있잖아. 거기엔.
손오공: 그렀네! 정말. 거기엔 있네!
이수르: 털 없는 원숭이는 말을 하면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한 거야. 서로를 속이고 아부하고 온갖 궤변을 생산해 내고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전쟁을 자행하면서까지 말이야. 나는 내 주인에게 음성훈련을 3년이나 받았어. 하지만 난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지 못했어. 그래서 단어 하나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지.
하루만: 그건 무척 쉬운 건데?
손오공: 난 태어나자마자 인간 말을 도통했는데?
버 질: 넌 천재니까 그렇지. 난 10년이 걸렸어.
이수르: 주인은 나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했어. 사실은 단어정도는 몇 마디 할 수 있었는데, 말을 하지 않았지.
버 질: 아 채찍질! 몸서리친다. 말하면 될 건데 왜 말하지 않았니?
이수르: 난 눈물과 절대적인 침묵으로 반항했어. 신음조차 내지 않았지.
손오공: 왜?
이수르: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복종을 강요했기 때문이지.
하루만: 넌 참 독한 면이 있구나.
버 질: 말하면 될 건데!
이수르: 나는 내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갈 심산이었지.
버 질: 원숭이에게 무덤이 어디 있니?
이수르: 어느 날 주인의 태도가 달라졌어. 나에게 충성심과 탐식성을 자극하기 위해 “나는 네 주인이다. 너는 내 원숭이다” 이 말을 귀에 수없이 반복했어. 그때마다 난 눈꺼풀을 내리깐 채 그의 말을 인정했지. 하지만 소리를 내기는커녕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았어.
하루만: 지독하다. 이수르.
이수르: (다시 침팬지로) 주인이 나에게 제스처를 다시 시용했어. 하지만 그의 과도한 행동에서 비롯된 나의 절망적인 침묵은 여전히 계속되었지. 우리 종족이 수 만 년 지속했던 우리들의 침묵 말이야.
사이.
이수르: 인간은 사악하고 야만적인 폭정을 통해 나무를 지배했던 우리 네발짐승의 가족들을 에덴으로부터 타도하고 그 숫자를 줄이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삼기 위해 암컷들을 잡아가 버렸으며, 서커스를 강요하고, 실험실의 도구로 이용하고 하고 있잖아.
사이
이수르: 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의 말은 유인원의 옛 영혼을 제거했지. 그래서 난 털 없는 원숭이의 말을 배우지 않는 거야. 그들은 영혼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털을 제거하는 진화과정을 거쳐 그들의 맨살을 옷으로 감추고 있는 거지.
무대 어두워진다.
음악 8-1 /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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