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다시 주작산에 오르다.
진달래꽃은
지난해보다 덜 피었다.
주작산에서
대흥사 가는 길은 험하다.
그러나
기암괴석과 진달래꽃이 동거동락하여 남녘 제일의 절경을 연출한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에는 진달래꽃이 이렇게 군락을 이루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다산이 지금의 풍광을 보았더라면 그는 분명 초당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배가 끝나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지난해처럼
올해도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진달래꽃은 주작산이다!
간기개보(簡寄皆甫)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주작산중일무장(朱雀山中一畝莊)
군가별관신청량(君家別館信淸涼)
누련죽오의상랭(樓連竹塢衣裳冷)
경핍하지장구향(徑偪荷池杖屨香)
세약묘두참옥판(細瀹猫頭參玉版)
요만상비작하상(遙彎象鼻作霞觴)
금년차회지하일(今年此會知何日)
병침상기십홀방(病枕常敧十笏房)
개보에게 부치다.
주작산 속에 있는 자그마한 산장 하나.
그대의 별장이 참으로 청량하네.
대밭 곁에 누대 있어 의상에 냉기 들고
연못가로 나 있는 길 지나만 가도 향기 스며
죽순은 살짝 데쳐 옥판에 차려두고
코끼리 코 모양으로 꼬부라진 술잔이라
금년의 이 모임을 언제나 또 가질까.
병이 들어 좁은 방에 늘 기대고 누웠다네.
다산은 덕룡산(德龍山)까지 주작산이라 부르고 있다. 내가 걸었던 산은 덕룡산과 반대 방향이다.
개보(皆甫)는 윤서유(尹書有, 1764~1821)의 자로, 다산과는 절친한 벗이면서 사돈지간이다.
덕룡산 아래 월하 마을에 ‘조석루(朝夕樓)’라는 윤서유의 별서(別墅)가 있었다.
다산이 이곳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할 때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윤서유, 초의선사, 해장스님은 말벗이자 글벗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진달래꽃을 보았다면?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본다.
주작산 자연휴양림은 강진에 있다. 산행의 대부분은 해남군에 속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