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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양을산에 꽃무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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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수상도시를 블러그에 올리고 자전거 터미널에 갔다.

자전거 터미널은 영산강 자전거길의 기착점으로 목포시가 자전거 애호가들을 위해 건설한 편의시설이다. 특별한 것은 없고 깨끗한 화장실과 넓은 주차장. 카페가 하나 있는데 2층의 야외석은 분위기와 전망이 참 좋다.

 

수변공원을 한번 둘러본다.

먹구름 속에서 달이 떠 있다. 주위는 컴컴한데 영암으로 연결되는 하구언 도로의 가로등만 눈부시게 어둠을 밝히고 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습기 먹은 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새벽인데도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들린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집에서 준비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하나 태운다.

 

다행이다.

지난번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던 귀여운 것들이 이번에는 그대로다. 한쪽은 풀이 많이 자랐다. 조명까지 받고 있어 마치 실물 같다.

 

어제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이로써 우리 식구들은 모두 2차 접종을 마친 셈이다. 내가 꼴찌다.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딸이 제일 먼저 접종을 끝냈다. 뉴욕에서 중학교 선생을 하면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두 번째는 범죄심리학을 전공하는 아들이다. 미국 서부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다. 작년에 대학을 마쳤는데 코로나로 졸업식이 연기되어, 7월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한 아내는 미국에서 2차 접종까지 마치고 왔다, 그런데도 14일간 집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그런 아내를 집에 두고 나는 새벽부터 집을 나왔다. 들과 산으로, 강과 바다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사진을 담았다.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름 큰일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미국에 갈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이 일만 생각하면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다.

 

백신을 맞은 후, 근처에 있는 양을산(陽乙山)을 찾았다. 이 산 정상을 아내와 함께 올랐었고, 이번이 네 번째다.

 

양을산에는 산림욕장이 있다. 치유의 숲, 지혜의 숲, 생각의 숲이라는 테마로 2.2km의 등산로도 개설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양을산의 매력은 상동 수원지에 있다.

 

이 수원지는 내 고향 유교리에 있는 두 수원지(3수원지, 4수원지)와 함께 일제 시절 조성되었다. 목포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제공할 만큼 수질이 뛰어나고, 수원지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아내와 나는 태을(太乙)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이름은 대단한데 흐르는 물이 개울 수준이다. 그러나 편백나무 밑에 설치된 등의자에서 오염되지 않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면서 애들을 데리고 갔다. 그때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딸이 3학년이었다. 그리고 애들은 거기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치고 지금 대학원생으로 성장했다. 애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내의 등이 휘었다.

 

등나무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니 항상 미안한 느낌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목포 사람들은 행복하다. 조금만 걸어도 산책과 명상,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꽃과 나무는 덤이다.

 

오늘 수원지 수변에서 꽃무릇을 처음 보았다. 영광 불갑사(佛甲寺)나 함평 용천사(龍泉寺)와는 다르다. 환벽당(環碧堂)의 분위기와도 또 다른 느낌.

보여주려는꽃이 아니라스스로 존재하는 꽃’. 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림이 내 시선을 잡았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것, 자연스러움이 좋다. 비록 초라한 몇 송이라도. 다른 풍경들은 이 상사화(相思花) 덕택으로 여기 오른다.

 

유달산에서 능소화를 보았다면 양을산에서 꽃무릇을 보았다.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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