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잠일기(栢蠶日記) 시작하며
목포에 이사 온 지 3개월이 지났다.
그간 1만 5천Km 이상을 달리며 만 컷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용량이 부족하여 비슷한 영상은 지우면서 찍고 또 찍고 있다.
목포!
중고등학교를 목포에서 다녔다. 목포에서 넘어지면 코 닿는 삼향(三鄕) 유교리(柳橋里)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냥 ‘목포’라고 한다.
목포는 항구다.!
무안현(務安縣)에 속하는 조그만 포구였던 목포가 항구도시로 개항된 지도 100년이 훨씬 지났다. 그래도 이 작은 도시가 주변의 육해(陸海) ‘촌놈’들의 교육적 발판이 되어 숱한 인재들을 배출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나도 그 촌놈 중의 하나다. 그 촌놈이 전국 각지와 소위 강대국이라 일컫는 러시아, 중국, 미국에서 나름의 활동을 하다가 고향 목포로 내려왔다. 이 귀향을 ‘낙향’으로 여겼던지 지인들과 친구들이 의아해한다.
유교 문중(門中) 단톡방에 이렇게 신고식을 했던 것 같다.
“저는 경기대, 미국 스타니스랍스키 연기대학 교수를 거쳐,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임기를 마치고 최근 목포로 이사했습니다.
앞으로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라도 선비들의 이야기와 유적, 명소들을 알리고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목포는 영산강과 황해가 만나는 지점으로, 저는 이 강과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옥암동(玉岩洞)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영산강과 호남을 깊게 공부하면서 우리 나주 나씨(羅州羅氏) 선조들이 호남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에 서서 꿋꿋하게 살아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호남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올리고, 자랑스런 선조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목포가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영산강과 서해’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렇다. 나는 역사학자 윤명철(尹明喆) 교수의 해륙사관(海陸史觀)과 궤를 함께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반도사관(半島史觀)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고토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그 광활한 땅과 해상왕국을 건설했던 장보고의 꿈이 새롭게 연결되어야 한다. 단절된 영산강과 서해는 다시 연결되어 위대한 한민족의 ‘해륙시대’가 열려야 한다. 목포는 그 중심에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영산강의 끝자락, 목포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곳으로 생거지(生居地)를 잡았다. 내 고향 삼향면이 읍(邑)으로 승격되고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남악(南岳)으로 확정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선지자적 예시에 박수를 보낸다.
젊은 시절 작명했던 예명(藝名) ‘선랑(仙郞)’의 덕분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며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 이제 백잠(栢蠶)이란 아호(雅號)로 성숙한 호남 선비의 길을 가고자 한다. 동백(冬栢)의 절개를 지키며 하얀 누에(蠶)처럼 이야기의 실을 풀어내겠다는 각오다.
백잠일기(栢蠶日記)는 그 이야기의 단편들을 모은 기록과 기억이다. 꼭 글만이 아니다. 지인들에게 설명 없이 보냈던 카톡 글과 사진도 기록과 기억의 기호가 될 것이다. 그 기호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여 언젠가 하나의 천이 되고 아름다운 옷으로 탄생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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