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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구순(九旬)에 바치는 4남매의 사모곡
어머님의 생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구순(九旬)이시다. 어느 간이역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느낌이다.
동생들이 어머니에 관한 시(詩) 한 편씩을 보내왔다. 우리 부모님은 무안군 상향읍 유교리에서 농사를 지어 4남매를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냈다.
아버님은 하늘나라에 사시고, 어머님은 쉴틈없이 일만 하시다가 온몸이 망가지셨다.
<구설몽(九雪夢) >은 구순을 맞이하는 어머님께 헌정(獻呈)하는 작품이다. 서포( 西浦) 선생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들려주려고 쓴 소설 <구운몽>에서 영감을 받았다.
두 여동생으로부터 글이 도착하였다. 사진과 별개로 우리 남매들의 글을 모아 <구설곡(九雪曲)>이라 명명한다, 어머니의 구순에 바치는 4남매의 사모곡(思母曲)인 셈이다.
가장 긴 블로그가 되었다. 어머니의 은혜에 비하면 결코 긴 것은 아니다.
가장 오래 끈 블로그가 되었다. 어머니의 사랑에 비하면 결코 오래 끌지 않았다.
"나라도 시끄럽고, 친지를 부르는 것도 민폐(民弊)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족끼리 식사만 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코 초라한 구순잔치가 아니다. <九雪夢>이 있고, <九雪曲>이 있으니. 불효자의 변명이 절대 아니다.
오늘도
구순잔치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고개를 숙입니다.
2025.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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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메리야스
나은경
양팔 내려뜨린 채
빨래 건조대에 엎어져 있는 반팔 메리야스
가만 보니
가슴골 안쪽에 천조각이 덧대어져 있다
손 야문 우리 엄마는
옷이란 옷은
모두 본인 몸에 맞춰서 고쳐입는다
힘들게 뭐하러 바느질이냐고
끌탕하는 나에게
'어째 그러냐면' 하고
엄마는 그때마다의 이유로
수고하는 연유를 말하기 시작한다
어깨가 끼어서 그래야
허리가 굽어서 그래야
통이 넓어서 그래야
맞춤식 메리야스
엄마는 이번에는
'어째 그러냐면'
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켈로이드성 흉터가
뿌리를 내린 엄마의 가슴골
똑바로 누우면 당기고 피나고
바람만 스쳐도 쓰리고 아리고
때되면 고름 나고 열나는
누더기 가슴골
메리야스 레이스가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르던 날
엄마는 부들부들한
천조각을 찾아 온 집안을 뒤졌고
아버지가 생전 입으셨던
반팔 실켓 면 티셔츠를 찾아냈다
구십 평생을
막 써버려
망가진 몸뚱이처럼
천조각이 덧대진 메리야스가
빨래 건조대에 매달려 있다.
나는 반팔 메리야스 안에서
엄마 가슴을
포근히 감싸안은
아버지를 어루만진다
'자네 고생을 너무 시켰어'
메리야스 주름 사이사이에서
슬쩍 새나오는 아버지 목소리
메리야스를 개키다말고
멈칫하는 나를 보고
'신기해야.
그것을 대놨더니 가슴이 하나도 안 아프다야'
엄마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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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지킴이
나은숙
어렸을 적
외가에 가면
친척들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 보따리 풀어내느라 왁자지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세 이모, 세 이모부,
세 외삼촌, 세 외숙모, 외사촌들...
울 엄마랑 울 아버지만 없었다.
농삿일이 바쁜 아버지는
하던 일 마저 끝내고 밤늦게 오실 터지만
친정 온다고 들떠 있던
엄마는 어디 갔을까?
엄마 찾아 이방저방 기웃거려보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울먹울먹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니
부엌에서 일하다말고
뛰쳐나온 울 엄마
'왜 엄마만 일해?'
음식준비하느라
혼자 정신없는 엄마를 잡아끌며
나는 심통을 부렸다.
시집오기 전엔
맏딸이라서
효녀라서 부엌에 있었고,
시집와선
음식솜씨 좋아서
시어른들 맘에 딱 맞게 살림 잘해서
부엌을 떠나지 못했고,
우리 네 남매 키울 땐
맛있게 먹는 우리들 보는 재미로
부엌을 지켰다.
구순 엄마는
이제 부엌을 떠났지만
든든한 부엌지킴이로
활약하던 엄마의 청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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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상훈
여린 허리가 굽었다.
돌정지 한복판 시금치 밭에 물주다
무거운 호스 이기지 못해
성미 급한 아버지와 부딪치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버린 뒤끝이다.
옆구리에 두 손 받쳐 굽은 허리 애써 펴고
직접 만든 식혜를 내오신다.
굽은 허리 생각하면 식혜를 마실 수가 없다.
두 무릎이 편치 않다.
장독대 건너 텃밭에서 파 몇 뿌리 뽑는다고
개수도랑 건너뛰다 돌부리에 엎어지고도
산더미 같은 일에 싸여 밀쳐둔 설움이다.
뒤뚱뒤뚱 간난장이 왼걸음으로
직접 띄운 청국장을 들고 오신다.
끄는 다리 생각하면 청국장을 뜰 수가 없다.
손가락이 굳었다.
수십 명 논꾼들 밥해 먹이랴
많은 밭꾼들 데리고 김을 매랴
밤늦도록 덕석 수북한 머윗대 까랴
손가락을 혹사시킨 직업병이다.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 폈다
가을햇빛 머금은 사과 하나를 깎으신다.
굳은 손가락 생각하면 사과를 집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만은 총총하다.
아득히 멀어져 간 고릿적 사연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줄줄 꿰고 계신다.
두서없이 풀어내다 때로 옆길로 새지만
정리해서 이해하면 들을 만하다.
도중에 아버지와 문중 얘기만 나오면
입 닫고 고개 외로 틀어 한숨만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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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나상만
어머니의 이미지를
시로 쓸 수는 있는 동생들이 부럽다.
나에게 어머니는
영산강이고 유달산이다.
그러기에
장편이 되어야 한다.
꼭
시를 쓰라면
이렇게 말하련다.
우리 엄마는
살아있는 포대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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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좋아한다.
포대화상을 좋아한다.
일출을 좋아한다.
꿈을 꾼다.
설원.
화상이 앉아 있다.
그 설원에 태양이 뜨고 있다.
내가
꿈을 꾼 것일까.
꿈도
촬영할 수 있을까.
오늘부터
함께
꿈을 꾼다.
아름다운 꿈
설몽(雪夢).
나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이길 소망한다.
2025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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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몽(九雪夢).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 소설 <구운몽(九雲夢)>과 비슷하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구운몽>은 불도를 수행하는 주인공이 8선녀를 만나 속세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된 뒤, ‘양소유’라는 남자로 태어나 8명의 여자와 혼인하고 높은 관직에 올라 부귀공명을 이루는 꿈을 꾸는 내용이다.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환몽(幻夢) 구조로 이루어진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이다.
<구운몽>의 창작 동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작가가 남해로 유배를 간 시절인 1689년에 모친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지었다”는 설과 " 서포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의 이야기책을 사 오라는 모친의 말씀이 귀국한 뒤에야 생각나서 며칠 만에 급히 썼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서포연보>로 인하여 김만중이 남해에 유배되었을 때 쓴 작품이라는 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필자의 관심은 김만중이 어머니 윤씨를 위해 <구운몽>을 저술했다는 점이다. 이제 <구설몽>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 셈이 되었다.
모든 블로그를 하루아침에 완성하는 일은 무리가 따른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요즘 시간을 두고 블로그를 만들어가고 있다. <구설몽>은 창작 동기가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다.
2025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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