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가는 날은 행복합니다.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영산강 강변도로를 달리며 자연과 호흡하는 순간순간도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저는 일의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관객들에게 갈채를 받는 공연도 즐거움을 주지만, 배우들과 땀 흘리는 연습도 큰 기쁨을 안깁니다.
나주에 가는 도중 보통 두 번씩 쉬었다 갑니다. 무안 몽탄의 식영정이나 나주의 석관정에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여름입니다.
어제는 작정하고 일찍 출발해 식영정에서 2시간 이상을 머물렀습니다. 550년 수령의 푸조나무와 팽나무 그늘이 만들어 주는 식영정의 여름은 시원합니다. 더구나 영산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한낮의 더위를 잊게 합니다.
호남에는 두 개의 식영정이 있습니다. 담양의 식영정은 광주에서 살 때 자주 가던 곳입니다. 목포로 이사 오면서 무안의 식영정을 더 찾게 되었습니다.
무안 식영정은 제가 자주 소개했던 정자입니다. 승문원(承文院) 우승지(右承旨)를 지낸 한호(閑好) 임연(林練, 1589~1648)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정자입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인 식영정(息營亭)은 담양의 ‘식영정(息影亭)’과는 달리 그림자 ‘영(影)’이 아닌 경영할 '영(營)' 자를 쓰고 있습니다. '식영(息影)'은 본래 '세상을 멀리한 음지에서 행적을 지우고 심신을 수양하면서 인간 본성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임연 선생이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명을 받아 남한산성 방어에 참여했다가 돌아와 이곳에 정자를 지었으므로 전쟁(병영)을 끝내고 쉰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쉬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경영한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옛날 선비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술이나 마셨다고 단정하시면 곤란합니다. 벼슬을 마치고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했던 것입니다. 정자의 교육적 기능을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식영정 현판 위의 사자성어 ‘연비어약(鳶飛魚躍)’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솔개가 하늘을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는 것이나 다 자연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즉 새나 물고기가 스스로 터득하는 도리(道理)는 천지간 어디에나 있다는 말로 군자(君子)의 덕화(德化)가 널리 미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부터 황금 같은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늘도 필요하고 쉼도 필요합니다. 식영정의 그늘이 동시에 해결합니다. 평일에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 고향 무안의 이 정자가 이 여름을 책임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식영정의 ‘영(營)’은 모르고 그늘만을 찾아서는 곤란합니다.
지금 식영정 입구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몇 그루 아니지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여름입니다.
시원한 그늘에서 멋진 연휴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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