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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흐른다

몽탄강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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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몽탄

 

영산강(주룡강, 적벽강)

 

영산강(몽탄)

 

영산강(몽탄)

 

영산강변(몽탄 늘어지마을)

 

영산강 억새꽃

 

영산강 억새꽃

 

영산강변 들녘(지금은 논이지만 옛날은 강)

 

영산강변 억새(옛날엔 물이 흐르는 강)

 

영산강변 양배추

 

영산강변

 

함평군 영산강변 들녘(이곳도 옛날엔 강)

 

영산강(몽탄, 건너가 나주시 동강면)

 

영산강(몽탄)

 

영산강의 석양(나주시 동강면)

18일 오후 1.

아내와 함께 영산강 순례에 나섰다. 옛날에는 주일에 두서너 번은 연례적으로 영산강을 찾았다. 요즘은 주로 새벽에 움직여 함께 다닐 수 없고, ‘나주 가는 날은 강의시간에 쫓겨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주룡나루에서 출발하여 사창, 몽탄, 몽탄대교, 나주 동강을 거쳐 다시 일로, 목포로 내려오는 코스다. 원래의 목적은 영산강 하류의 억새꽃을 감상하고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영산강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리 불렀다, 또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각기 있었다. 주룡나루가 있는 곳은 적벽강, 그리고 그날 우리가 간 곳을 몽탄강이고 불렀다.

 

몽탄강은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을 연결하는 영산강 하류를 말하며 이름의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이성계 전설은 왕건의 전설을 모방한 것이고, 견훤의 설은 전쟁의 패자가 그런 꿈을 꿀 수 없다. 꾸었다면 승리를 해서 한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 그 지역에 대한 역사와 전설을 알고 나면 더 값진 여행이 된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해 왔다. 물론 모르고 갔다가 다시 공부하고 다시 가는 곳도 많이 있다. 이곳은 횟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다니는 곳이다.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멋있다가 아니라, 이 멋있는 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교훈까지 얻으면 금상첨화의 감상이 된다.

 

그날 아내에게 무척 잘난 체를 많이 한 거 같다. 아내는 이미 귀가 닿도록 들었던 얘기다. 더구나 전날 남은 인삼 닭고기로 인삼 막걸리를 몇 잔 걸쳤으니 에너지 충만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망해갈 무렵, 궁예는 고려국을 세우고 견훤(甄萱)은 전주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워 후삼국 시대가 되었다. 이때 궁예의 막하에는 야심 많은 청년 장수 왕건(王建)이 있었다.

 

서기 90327세의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서해를 돌아 영산강 줄기를 타고 올라와 남도 요새인 나주를 공략했다. 서남부를 빼앗은 왕건은 돌아갔는데 견훤이 다시 나주를 치고 서해를 통해 중국의 오월(吳越)과 교역을 하면서 중부의 궁예를 위협하게 된다.

 

909년 왕건은 다시 수병 2,500명을 거느리고 서해를 차단하는 일을 맡아 무안 해제면 해역에서 후백제가 오()나라에 보내는 파견선을 격파하고, 이어 진도를 함락한 뒤 압해읍의 고이성(古耳城)을 공격했다.

 

고이도(古耳島)라 불리던 이 섬은 망운면 건너에 있는 섬으로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고, 이곳은 서해의 요충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왕건은 다음 해에 나주를 다시 탈환하기 위해 목포를 거쳐 덕진포 앞바다인 나주시 동강면 몽송마을에 이르러 견훤을 치기 위해 진을 쳤다.

 

견훤의 군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물밀 듯이 밀려와 왕건의 군사들은 포위당하고 말았다. 삼면은 견훤의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고, 뒤로는 영산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깊은 좌절의 늪에 빠진 왕건에게도 밤이 찾아왔다. 사경을 헤매는 왕건에게 백발의 노인이 꿈에 나타났다.

 

대업을 이루려는 장군이 일기도 모르고 물길도 모르고, 주위 환경의 변화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는가? 지금 강물이 빠져있으니 군사를 이끌고 속히 강을 건너 두대산(頭臺山)을 향하여 진군하다 천 하류에 이르러 진을 치고 있으면 견훤의 군사들이 쫓아올 것이다. 거기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그들을 공격하라. 이번 전쟁의 승패는 병사의 숫자보다 전략에 있다. 화공법(火攻法)을 써서 견훤의 군사들을 공략하라.”

 

꿈이었다. 이상한 꿈에 밖으로 나가 보니 출렁거리던 강물은 많이 빠져있고 여울물만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왕건의 군사들은 동강면 옥정리를 뒤로 두고 두대산을 향하여 행군하게 된다.

 

왕건은 병사들을 민가로 보내 이엉을 징발하여 산봉우리에 둘러치고 석회가루를 모아 천(지금의 파군천) 상류에서 풀게 하였다. 군사들에게 솜과 기름을 나누어주고 산등성이에 매복시켰다. 적군이 지날 때 협공토록 했다.

 

견훤의 군사들은 적군이 포위된 상태고 강물이 넘치도록 흐르니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다. 잠에서 깬 견훤은 깜짝 놀랐다. 옥정리 강가에 있어야 할 왕건의 군사들은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견훤은 강을 건너 적군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파군천에 이르렀을 때 강물은 하얀 쌀뜨물이 흘렀고, 두대산을 바라보니 수 만석의 군량미 노적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결론은 왕건의 대승리. 견훤은 도망하여 생명을 겨우 유지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왕건이 잠들어 꿈을 꾼 소나무가 있는 곳을 몽송(夢松)마을이라 부르고, 그 강을 꿈에 의해 건넜다고 하여 꿈 ()’ 여울 )’을 붙여 몽탄강(夢灘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몽탄강 하류의 전승지는 군대를 격파했다 하여 파군천(破軍川)이라 하였으며, 그 천을 이은 다리를 파군교(破軍橋)라 한다. 그날 내가 돌았던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몽송마을은 하몽탄(下夢灘)이라 하고, 무안군 몽탄면 몽강리는 상몽탄(上夢灘)이라고 부른다.

 

영산강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된 원동력을 제공한 강이다. 고향이 충청도인 충무공은 호남을 극찬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역시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대선이 입박해지면 이 말이 나온다.  그 유래를 정확히 알고나 썼으면 좋겠다.

 

임진왜란 당시의 사정을 분석해 보면 호남 의병, 군량미 조달, 그리고 지형 지세를 아는 전라도 수병들의 역할이 무척 컸다. 이순신을 해전의 영웅으로 만든 것은 물길과 뱃길을 아는 영산강 뱃사람들이다. 그걸 가르치는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

 

몽탄면은 무안군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이제 무안군과 나주시는 왕건과 몽탄강의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 개발에 눈을 떠야 한다.

 

미천한 나를 나주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한 지자체에 희망을 걸어본다. 또 주룡에 잠드신 무안공, 금호공, 소포공 할아버지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호남 역사 투어의 특강을 제의해 온 무안문화원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가 5만을 돌파할 예정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꼭 온다.

나의 경험에서 얻은 확신이다.

 

 

  오늘 글은 조금 깁니다.

  글이 긴 만큼 사진을 아낍니다.

  사진이 많으면 생각의 여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몽탄강의 불타는 석양은 추후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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