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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 우화(栢蠶寓話)

흰둥이와 검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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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불도에 흰둥이와 검둥이가 살고 있다.

흰둥이의 주인은 근처 절의 스님이다. 검둥이는 회센터 주인이 기르고 있는 개였다.

 

햇볕이 따가운 어느 여름날 오후,

단풍나무 그늘 밑에서 흰둥이와 검둥이가 만났다.

 

흰둥이가 검둥이에게 하소연하듯 입을 열었다.

 

  “요즘 인간들 가관이다!”

  “더운데 열 받지 마. 뭔데?”

  “서로 물고 뜯고 난리다. 개판 오 분 전이다.”

  “놔 둬. 인간들이 원래 그렇잖아. 선거철 되면 더 극성이다!”

  “그런데 말이야, 지네들 싸우면서 거기다 왜 우릴 갖다 붙이지? ”

  “어떻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흰둥이의 말에 검둥이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웃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네 표정을 보고, 그걸 인간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니?”

  “개 웃음 친다고 하겠지.”

  “그래. 남의 말에 끄떡하면 개뼈다귀 같은 소리’ 한다면서 싸우고.”

  “조금만 힘들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하고.”

  “절간 개 3년이면 불경을 읽는데.”

  “횟집 개 3년이면 회를 치는데 말이야.”

 

흰둥이와 검둥이가 껄껄 웃었다.

이번에는 검둥이가 흰둥이에게 물었다.

 

  “너 이전투구(泥田鬪狗) 아니?”

  “정도전(鄭道傳)이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했던 말?”

  “그래. 진흙밭에서 싸우는 우리를 빗대어 한 말이다. ”

 

검둥이가 흰둥이에게 이전투구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경중미인(鏡中美人, 거울 속에 비친 미인)

  충청도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전라도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들)

  경상도 송죽대절(松竹大節, 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

  강원도 암하노불(巖下老佛, 바위 아래 늙은 부처)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봄 물결에 던져진 돌)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 삼림 속의 용맹한 호랑이)

 

정도전은 태조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 쉽게 평을 하지 못했다.

태조가 재촉하자 정도전이 이렇게 말했다.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밭에서 싸우는 개입니다.”

 

태조의 안색이 변하자 정도전이 말을 고쳐 다시 말한다.

 

  “이렇게도 말합니다. 석전경우(石田耕牛), 돌밭에서 밭을 가는 소이기도 합니다.”

 

태조는 얼굴에 희색을 띄우며 정도전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난 흰둥이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정도전 그놈 참 고얀 놈이다. 우리가 언제 진흙밭에서 싸웠냐? 그리고 말이야, 왜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이성계한테 아부한 거지. 인간처럼 간사란 게 없다. 팔도마다 영웅호걸 가득한데, 어느 지역 특급이고 어느 지역 저급이냐.”

 

흰둥이와 검둥이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흰둥이가 호남찬가를 부르면 검둥이가 포항의 노래를 불렀다.

 

검둥이가 속담을 하나 읊으면 흰둥이도 화답했다.

 

  “등겨 먹던 개는 들키고 쌀 먹던 개는 안 들킨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

 

  풍년 개 팔자다.

  개가 웃을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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