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과 아내의 고향은 삼향입니다. 저는 바다가 없는 유교리이고 아내는 바다가 접한 왕산리죠.
우리는 오늘 오랜만에 바다로 가기로 했습니다. '전망 좋은 곳'에서 12분 거리입니다.
왕산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소위 뜨는 동네입니다. 옛날에는 정상에 봉화대가 있는 산, 봉수대가 우뚝 솟아있는 정도로만 기억에 남아 있는 데 많이 변모했지요.
그런 시골에 초의선사의 유적지가 생기고 오승우 미술관도 건립되어 바다가 보이는 곳에는 고급 주택과 별장들이 즐비합니다.
초등학교 2년 후배인 아내는 저보다는 들뜬 모양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바다를 보는 정서가 저와는 다르겠지요. 석현동, 대박산, 대양리를 거쳐 마동 앞을 거쳐 왕산으로 향했습니다. 정겨운 이름들입니다.
섬 이름을 모릅니다. 모세의 기적처럼 썰물 때는 길이 나고 섬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금동마을을 거쳐 어떤 곳에 시선을 멈췄습니다.
동물적인 감각이랄까요?
오늘의 사진은 바로 그곳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오늘은 60컷을 제공합니다.
고향 바다의 석양과 낙조입니다.
아내의 고향, 저의 고향, 우리 모두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초의(草衣)의 귀향시(歸鄕詩) 함께 올립니다.
<歸 故 鄕> (귀 고 향 ) <고향에 돌아오니>
遠別鄕關四十秋 (원별향관사십추) 멀리 고향 떠난 지 사십여 년만에
歸來不覺雪盈頭 (귀래불각설영두) 희어진 머리 깨닫지 못하고 돌아왔네
新基草沒家安在 (신기초몰가안재) 새터의 마을은 풀에 묻혀 집 간 데 없고
古墓苔荒履跡愁 (고묘태황리적수) 옛 무덤은 이끼만 끼어 걸음마다 수심에 차네
心死恨從何處起 (심사한종하처기) 마음 비운지 오래인데 한(恨)은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나는가
血乾淚亦不能流 (혈건루역불능류) 피가 말라 눈물조차 흐리지 않는구나
孤丈更欲隨雲去 (고장경욕수운거) 지팡이에 의지한 외로운 나, 구름 따라 떠나노니
已矣人生愧首邱 (이의인생괴수구) 아서라 수구(首邱) 인생이라는 말이 참으로 부끄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