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박통노통>의 연습 사진(사진 1, 사진 2)과 연극 <달빛결혼식>의 공연 사진.
오늘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쓰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12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2년 전이다. 연극 <박통노통>을 연습하는 도중, 어떤 배우가 김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날 연습은 더 진행될 수 없었다.
연극 <박통노통>은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저승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노 대통령의 운명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급히 귀국했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작품을 쓰면서 50대 이상의 배우 4분을 뽑았다. ‘박통’ 역과 ‘노통’ 역할의 배우를 각각 두 명씩 캐스팅하여 장기공연에 따른 준비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발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김 대통령의 서거로 연극 내용은 새롭게 구성해야 했다. 이 연극의 큰 이슈인 박통과 노통의 대결이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크게 희석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품을 새로 쓸 수밖에 없었다. 공연 10일을 남기고.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예술의 전당에서였다. 친구이자 배우인 정종준 씨가 출연하는 연극에 초대받아 갔었는데, 관객석으로 낯익은 얼굴의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이셨다. 종준 배우가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동시에 초대한 것이다. 그때 나는 러시아에서 잠시 귀국한 때였다.
나는 가벼운 묵례만 했다. 대통령도 웃으며 답례를 보내왔다. 그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특별하게 대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연극배우 손숙 선생과 제작자 송승환 씨가 에스코트하는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의 만남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러시아에 다시 갔고, 내 성격이 “존경하는 사람을 멀리서 응원하면 그만이다”는 주의였기 때문이었다.
연극 <달빛결혼식>에서 두 장면에 ‘박정희’와 ‘김대중’을 등장시켰다. 지역감정과 영호남의 갈등과 화합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연극이다. 내가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정치인들도 큰 관심을 갖고 극장을 찾아 주었다.
뮤지컬 <김대중>을 제작하려고도 했다. 광주시립극단의 2020년 정기공연작으로 이 작품을 전주시립극단, 순천시립극단과 공동으로 제작하려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었다. 경북 출신 작가 김영무 선생이 작품을 썼고, 나는 예술감독만 맡으려는 계획이었다.
총제작비 4억 원이 투입 예정인 이 작품은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광주시립이 3억 원을 부담하고 전주와 순천이 5천만 원을 공동 투자하기로 했었지만,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또 하나의 이유도 있었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친밀하게 지내는 나를 왠지 모르게 광주시장이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감지되었다. 당시 박 국정원장은 민주당 소속이 아니었다.
이러한 연고로 나는 임기를 마치고 미련 없이 광주를 떠났다. 더 이상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떠난 후, 광주시립극단이 또다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떠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광주시는 아직도 후임자를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자처하는 광주의 민낯이다.
김대중 대통령만큼 문화를 사랑하는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한류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정책 개방에 힘입은 바 크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걸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문화의 꽃은 피지 않는다.
연극 ‘박통노통’에서 박통이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을 노통에게 알리는 장면을 소개한다. 노통이 역대 정권의 장점을 전두환과 노태우만 빼고 하면서 이야기가 연결된다.
박통: 전두만과 노새우는 왜 빼는가? 아직도 이승에서의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가?
노통: 당선된 뒤에 전두만 씨를 초청해 만찬도 했습니다.
박통: 그래도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붙여주게.
노통: 여기 오면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박통: 자네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다른 얘긴데, 김대중 대통령이 며칠 전 이곳으로 왔네.
노통: 김대중 대통령께서요?
박통: 그렇다네. 솔직히 말해 내가 그분한테 못할 일을 많이 했어. 우리 큰딸이 나 대신 사과를 했고, 또 병문안도 갔다네.
노통: 참으로 큰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크게 걱정하신 분입니다.
박통: 인정하네. 난 그분의 “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최대의 정치 덕목이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네.
노통: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민주화운동의 배후자로 지목,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한 당사자도 용서하신 분입니다.
박통: 그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네. 그분은 생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도 화해와 용서의 단초를 마련하셨네. 언젠가 우리도 그분을 만나겠지.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화해를 하고 그분을 뵙자구.
노통: 찬성입니다.
박통: 이런 의미에서 화해의 술을 한잔하세. 내가 술을 준비했다네. 자, 저쪽으로 옮기세.
노통: 대단하십니다. 철저하십니다.
그들,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시작한다.
박통이 술을 따른다.
박통: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노통: 위하여!
건배한다. 술을 마신다.
무대 어두워진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오늘!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력이 그리워진다. 이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해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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