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야 놀자

영모정과 백호 임제

나상만 2021. 9. 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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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주 가는 날.

차가 거의 없는 영산강 강변도로를 달리는 기분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강의는 3시부터인데

일찍 출발하여 두 군데에서 휴식을 취한다.

그중 하나가 영모정(永慕亭)이다.

 

1520년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 1486~1553)이 건립한 정자다.

처음엔 임붕의 호를 따라 귀래정으로 불리었는데, 1555년 두 아들 임복(林復, 1521~1576)과 임진(林晉)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으로 고쳐 불렀다.

 

현재의 건물은 1982년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영모정 앞으로 영산강이 내려다보인다.

옛날에는 바로 아래까지 강물이 흘렀으니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주위에는 4백 년이 넘은 팽나무와 괴목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영모정을 말하면 백호(白湖) 임제(林悌)를 언급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모정에는 그의 시비가 있다. 또 근처에 그를 기리는 문학관도 있다.

 

역시 나주는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도시다.

 

근처에 나주임씨(羅州林氏) 대종가(大宗家)가 있다.

할머니가 나주임씨여서 자주 들렀던 곳이다.

 

백호는 호탕한 삶을 살았다.

 

조선 최고의 명기 황진이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백호는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를에 들른다. 그러나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한 그는 그길로 술과 잔을 들고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간다.

눈물을 흘리며 시조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지키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는 사실이 말썽거리가 되어

백호는 결국 파면을 당했다.

 

오늘은 사진 몇 장만 올리고 다음에 언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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