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창작의 현장

'짧은 사랑을 위한 소극"에 보내는 갈채

나상만 2014. 10. 15. 11:47
728x90

 

'짧은 사랑을 위한 소극"에 보내는 갈채

 

                                                                                                      예술감독: 나상만

 

    7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글로벌 뮤지컬의 제작과 러시아 박흐탄코프 아카데미 극장의 초청공연 준비를 하면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연습실을 마련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극단이 이제 10개를 넘어섰다. 나름대로 활동하면서 각종 연극제에서 연거푸 수상을 하고 있다. 연기교육의 씨앗이 이제 하나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연극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대형 뮤지컬과 초대형 기획공연, 그리고 각종 페스티발을 통해 외국 공연이 경향 각지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공연의 홍수 속에서 순수연극을 고집하는 대학로 연극과 젊은 연극은 출연료는 고사하고 제작비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한 고충 속에서 안톤 체홉의 단막극 <곰>과 <청혼>을 옴니버스로 형식으로 묶은 <짧은 사랑에 관한 소극>을 무대에 올리는 젊은 연극인들의 열정에 예술감독을 흔쾌히 수락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연극에 예술감독을 하거나 연기지도를 하는 것도 나름의 보람이 있다. 그들의 열정이 나에게 새로운 각오와 에너지를 충전시키기 때문이다.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항상 겪는 심적 고충은 예술감독의 역할과 연출의 영역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는 의외로 예외였다. 연극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의 참신한 기획과 신선한 연출의도가 예술감독의 역할을 ‘연기지도’에만 국한시킬 만큼 명료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스타니스랍스키가 우리 연극계에 던지는 화두는 연기의 진실성에 있다. 그러나 러시아 유학파들의 공연에서 드러나는 아쉬움은 러시아 무대의 일방적 모방과 배우들의 화술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화술의 문제는 우리 연극계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이번 <곰>과 <청혼>의 공연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다소나마 극복되리라 믿는다.

   연극은 관객과의 만남으로 최종적인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악한 소극장 무대를 찾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이 한국연극의 굳건한 미래를 향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젊은 연극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지속적 활동을 기대해 본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