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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일본인의 메시아 왕인박사와 책굴 오늘은 왕인박사의 ‘책굴’을 소개한다. 왕인이 여덟 살 때 입문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친 ‘문산재’와 왕인이 동료들과 담론했다는 ‘양사재’를 조금 지나면 거대한 석상이 하나 나온다. 후대인들이 왕인의 모습을 바위에 새겼다는 왕인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책굴 입구가 있다. 왕인이 홀로 밤낮없이 공부했다는 이 책굴은 입구는 좁으나 들어가면 꽤 큰 공간이다. 운동 신경이 둔한 사람은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들다. 그러나 노력하면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왕인 유적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 책굴이다. 왕인은 이곳에서 경서를 읽으며 도를 닦았다. 이 깊은 굴에서 인간 심연의 깊은 정신세계를 탐구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역사서에 왕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더보기
왕인(王仁) 박사의 숨결 마침내 12월이다. 손님과 계절은 즐겁게 맞이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날씨는 춥고 코로나는 비상이다. 가뜩이나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불안이 이어지며 각국 증시도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우울한 소식이 계속되는 12월 1일, '왕인박사유적지'를 소개하려 한다. 일본에 말(馬) 문화를 전파한 아직기(阿直岐)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자 일본 왕 응신천황(應神天皇)은 학덕 높은 학자를 추천해 달라고 간청했다. 아직기는 자신보다도 뛰어나다며 왕인 박사를 추천하게 된다. 왕인은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영암 상대포(上臺浦)를 떠나 일본에 건너간다. 경서에 능통한 왕인은 일본 왕의 요청에 의해 태자 토도치랑자의 스승이 되고, 군신들에게도 경서(經書)와 역사를 가르쳤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 더보기
금사정과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은 많다. 그러나 동백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는 나주 금사정이 유일하다. 금사정(錦社亭)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의 죽음 이후 그와 뜻을 함께했던 나주 출신 선비들 11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계'를 결성하고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은 정자이다. 금사정 안에는 금사정 제액과 더불어 김만영(金萬英)의 '금강중수계서(錦江重修稧序)'와 나동륜(羅東綸)의 '금강정중수상량문(錦江亭重修上樑文)' 나정규(羅錠奎)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동백나무 가운데 가장 굵고 수령도 가장 오래되어 천연기념물 515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백나무와 금사정을 말하기에 앞서 전라도 유학자들의 계보와 성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 선비들은 처음부터 .. 더보기
목포진(木浦鎭) 역사공원에 오르며 목포에 만호동(萬戶洞)이란 곳이 있다. 학창시절 귀가 아프게 들었는데, 왜 만호동인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60이 훨씬 넘어서야 만호동의 유래를 알았다. 그걸 모르고 목포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어제 아내와 함께 목포진(木浦鎭) 역사공원에 갔다. 목포는 예부터 내륙과 해상을 연결하는 군사상의 요충지였는데,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水軍)의 진영(鎭營)으로 목포영, 목포대라고 부렀다. 조선 왕조 때 각 도의 진(鎭)에 붙은 종 4품의 무관인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 만호진, 만호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1439년 (세종 21년) 처음 목포진의 설치가 재가 되었으며, 성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1502년 (연산군 8년)으로 전해진다... 더보기
현장수업을 마치며 오늘은 종일 집에만 있었습니다. 블로그 둘 올리고 김우진 선생과 차범석 선생의 일생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두 분 다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자 삼 대를 못 간다.” 우리 집안과 마찬가지로 두 분의 집안도 3대를 가지 못하고 기울어졌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두 분은 이 땅에 이름 석 자를 남기셨습니다. 한국연극의 초석을 다지신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말입니다. 연출가는 사진을 남기고 극작가는 작품을 남깁니다. 시대가 바뀌어 연출가도 자신의 공연 작품을 남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분이 연출한 작품을 영상으로 볼 수 없지만, 두 분의 희곡을 공연한 작품들을 모아 언제든지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목포문학관이 해야 할.. 더보기
김우진, 차범석 선생과의 만남 목포는 문학과 예술의 도시이다. 목포 출신이거나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는 문인들로는 한국 문단의 최초의 본격적인 여류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차범석, 평론가 김 현, 소설가 천승세, 최인훈, 김은국, 시인 김지하 등 그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목포는 단일 도시로는 가장 많은 예술원 회원을 배출한 예향의 도시이다. 목포시가 극작가 김우진, 여류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선생의 업적과 그분들의 생과 문학을 작은 공간 속에 압축한 ‘목포문학관’을 2007년 10월 9일 개관하였다. 지상 2층 건물로 1층엔 박화성과 차범석의 공간을 마련했고, 2층엔 김우진과 평론가 김현의 공간을 마련하여 국내 최초 4인 복합 문학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난 금요일 동신대학교 대학원.. 더보기
내 고향 미술관에서 지난 금요일부터 목포문학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청계면 월선리 예술촌, 일로읍 55아트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제 고향 목포와 무안이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문화공간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문화예술인들이 무안군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먼저 문화패들과 어제 방문한 무안군오승우미술관과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원로 서양화가이자 예술원 회원인 오승우 화백이 자신의 작품 ‘십장생도’를 비롯한 178점을 기증하고 무안군이 53억을 들여 건물을 짓고 2011년 개관했습니다. 삼향읍 왕산리 초의선사 유적지 아래에 건립된 이 미술관은 시골에서는 드물게 전문인 관장과 학예사를 두고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제 고향에 이렇게 훌륭한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문제는 관람.. 더보기
무등산 규봉암 설경 날마다 호랑이가 장가를 갑니다. 한반도에서 불갑산을 끝으로 호랑이가 종적을 감췄으니 다시 불러들일 하늘의 계획인가 봅니다. 비바람이 불다가 해가 뜨기를 반복합니다. 덕분에 무지개를 보았으니 큰 행복이지요. 덕유산은 눈이 많이 내려 ‘겨울 왕국’이라고 합니다. 서울에도 첫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서울에 첫눈이 내리길 내심 기대했지요. 저는 사진과 글을 무조건 올리질 않습니다. 어느 곳엔가 눈이 내려야 오늘 사진이 제격이거든요. 광주에 있을 때 무등산과 금성산에 자주 올랐습니다. 오늘은 무등산 설경 사진과 나성군 공언 할아버지의 역사가 살아있는 무등산 규봉사(圭峰寺) 사진 올립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고려 우왕 7년(1381년 4월) 지리산에 있던 왜구가 이 규봉사 암석 사이에 본거지를 두고 출몰했을 때, 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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