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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일에 내 인생의 큰 스승이 두 분 계신다. 단재 신채호 선생과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다. 단재는 나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신 분이고 스타니스랍스키는 나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신 분이다. 젊은 시절에 쓴 소설 과 희곡 의 주인공은 ‘선랑(仙郞)’이다. 단재의 에서 영감을 받아 작명한 젊은 시절의 아호(雅號)였다. 소설 의 성공으로 나는 러시아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경제적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에서 ‘스타니스랍스키연극상’을 제정하고, 스타니스랍스키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귀국하여 한국에‘스타니스랍스키연기원’을, 미국에‘스타니스랍스키연기대학’을 창설하여 연기교육의 체계화에 땀을 흘렸다. 두 스승의 가르침은 지금도 내 인생의 지표가 되어 나의 교육적, 문학적, 예술적 활동의 튼튼한 토대로 작용한다. 직접 배우지 않았지.. 더보기
마한문화공원 영암군 시종면에는 마한문화공원이 있다. 시종면은 고려 때 나주 반남현의 일부였으며 조선시대까지 나주목 종남면이었고, 영암군이 된 것은 1895년이다. 마한문화공원이 있는 시종면 일대는 옥야리, 신연리를 중심으로 금지리, 만수리, 내동리, 태간리 등 8곳에 50기 이상의 옹관 고분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이 일대가 마한사회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마한문화공원은 영암군이 영산강 유역에 산재한 고분문화와 마한의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영산강 유역의 독자성이 가득한 고대사를 조망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커뮤니티센터와 남해신사, 고분탐사관, 남해망루 등이 있다. 고분탐사관은 난생설화를 모티브로 하여 내부에는 옹관 고분의 발굴과정, 시신의 매장형태를 모형으로 복원하였다. 전시관의 외형은 옹관의 형상을 이.. 더보기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 새벽 4시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담배가 떨어져 밖에 나왔다가 고생을 좀 했습니다. 휴대폰과 아파트 터치키를 놓고 나와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아파트 벨을 누를 수 없습니다. 은행 지점장을 정년퇴직한 아내는 늦잠자는 것이 소원입니다. 자동차 열쇠는 가지고 나와 다행입니다. 고민하다가 평화광장으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찬 바람만이 매섭게 붑니다. 해수면이 어제보다 3m는 낮아졌습니다. 4시 50분에 돌아와 아파트 벨을 눌렀습니다. 신호가 3번 울렸지만, 반응이 없어 담배를 샀던 24시 체인점으로 갔습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휴대폰을 빌려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신호만 갑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벨을 누릅니다. 역시 반응이 없습니다. 두 번 더 .. 더보기
마한, 비밀의 문 마한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진한·변한과 함께 삼한(三韓) 시대를 이끌었고, 경기 충청 전라지역을 포괄하는 꽤 넓은 영역을 차지했다. 또 54개 부족 국가들이 연맹체를 형성했는데 백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우리는 마한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진 시기가 대략 4세기 후반으로 백제 근초고왕 시절에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배웠다. 그러나 마한은 영산강을 중심으로 최소한 6세기까지는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제295호),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25호)을 비롯해 고분, 옹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마한의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분포된 마한 고분은 대략 820개 정도 발견되었다. 이에 대한 발굴과 조사는 전라남도와.. 더보기
마한(馬韓 )으로의 초대 인류의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탄생했고 발전했다. 나일강의 이집트문명,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강의 인더스문명, 황하의 황하 문명이 그 대표적이다. 강은 산에서 발원하여 계곡과 들판을 지나며 바다와 합류하는 물길의 흐름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강과 바다에 있음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대한민국의 5대강인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은 76개 시와 군 2,100만 명이 생활하는 삶의 터전으로 민족문화의 보고이자 국민의 생명수이며 경제활동의 대동맥이다. 광주시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영산강에 깊은 애정을 갖고 나름의 공부를 해왔다. 왕건이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 더보기
매화의 향기 예술가의 작품은 관람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미술작품을 수집하던 시대가 있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지금도 컴컴한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 소치의 작품들은 참으로 많다. 85세까지 사셨으니 창작 활동 기간이 길었다. 소치의 작품은 위작(僞作)도 많다. 그만큼 이름값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올리는 작품은 진품이다. 운림산방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도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작품도 운명이다. 작품도 터(場)를 잘 잡아야 한다. 작품도 명당이 있다. 미술작품도 연극처럼 현장에서 봐야 한다. 운림산방에서 소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도 운명이다. 마치 인간처럼. 소치의 작품에서 매화 두 폭을 골랐다. 나는 매화를 좋아한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부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다. 매.. 더보기
추사(秋史)와 소치(小痴) 특별한 교재나 스승도 없이 를 모사하던 소치는 체계적인 그림 공부를 하지 못했다. 초의선사의 배려로 대흥사에 머물던 소치는 28세에 해남 녹우동(綠雨堂)을 찾아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후손 윤종민(尹鍾敏)을 만난다. 유종민은 가보(家寶)나 다름없는 을 빌려준다. 초의선사의 소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치에게 그림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스승은 초의였다. 1839년 봄 초의선사는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두릉(杜陵)으로 가는 길에 소치의 그림을 가지고 가 김정희에게 보인다. 추사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허련은 상경하여 추사의 집인 월성위궁(月城尉宮)에서 추사 문하의 문인화가들과 함께 체계적인 서화 수업을 받게 된다. “화가의 삼매에서 너는 천릿길에 이제 겨우 세 걸음 옮겼다. 손끝으로 재주만 부리면.. 더보기
운림산방(雲林山房)과 소치(小痴) 봄학기 강의계획서 작성을 마쳤다. 한 학기 원생들과 함께 공부할 과목은 ‘연극제작연구’다. 원생들과 함께 연극제작에 관한 공부를 하며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운림산방(雲林山房). 이름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산방 풍광 자체가 그대로 예술이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런 운치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앞으로 열 번은 더 가야 한다.풍광의 주인공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도 최소한 4번은 다루어야 한다. 어쩌면 더 언급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글씨, 그림, 시에 타고난 재주를 타고난 소치는 초의선사를 스승으로 만나 서화(書畫)에 눈을 떴고, 추사 김정희를 만나 시와 글씨를 다듬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을 이루었다. 남종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은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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